[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쇠락하는 국가들의 공통적 현상 ‘저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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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역동성 사라지면서 극단적 이기주의 만연
저비용·고효율 위한 국가의 강력한 억제력도 필요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05 06:31:40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 것이 엊그제 같다. 유교권인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의 경제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이러한 예측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 빗나가고 있다. 너무 앞서 샴페인을 터뜨린 탓인지 황당한 자만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듯하다.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내부의 혼란 가중으로 스스로 자멸하고 있다는 진단이 더 정확하다. 먼저 매를 맞은 일본은 바닥까지 간 이후에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정치 시스템의 붕괴와 이에 따른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집단적 이기주의가 표출돼 국가의 좌표가 흔들리면서 정점에서 내려오는 추락의 모습이 적나라하다.

무질서와 혼돈이 멈추지 않는 것은 고도 경제성장에서 비롯된 각종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성장 패러다임 시프트, 즉 국가 발전 재설계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시기이지만 이에 대한 합의를 좀처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혼돈이 가중된다. 부분적 혹은 땜질식 임기응변의 변화만으로는 이러한 난관을 수습하기 어렵고 국가 전반의 대대적 수술·개혁이 필요해진다.

무분별한 세계화, 그리고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엉성한 민주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세계 각국에서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보편적 현실이다. 국가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으나 특정 부류의 이익을 위한 선동적 포퓰리즘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 현재 상황은 더 엄중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삶의 질은 계속 하락하고 격차가 줄어들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가가 망하든 말든 나만 잘살겠다는 개인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를 단절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다. 구태의연한 정치 집단의 변화에만 의존하기에는 내부 상처가 너무 깊고 넓다. 어디 하나에만 손을 대서는 성과가 나지 않고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식으로 공허한 결과만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지난 18년간 무려 380조 원의 재정을 투입하고서도 저출생 속도는 더 빨라져 2023년 4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적색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저출생·고령화라는 인구 절벽의 현상은 국가 소멸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효율이 날 수 있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사회 전반적인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비용이 덜 드는 사회로 시급하게 전환해야 한다. 자녀 한 명 양육하는데 평균 2.5억 원이 든다고 하니 아이를 낳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도를 넘은 영어 유치원·초등 의대반·사설 놀이학원 등 기가 찬다. 공교육이 자리를 잡지 못하니 사교육이 판을 치면서 양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정부가 가진 자들의 놀음을 수수방관하면서 지구촌에서 가장 이상한 나라가 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같은 맥락에서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도 더 미룰 수 없다.

출생률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의 협조도 절실하다. 육아휴직에 대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일본과 같이 육아 휴직률 목표치 공개를 법으로 강제하는 정책을 당장 시행해야 한다. 업무 유형을 조정하여 육아 가능 재택근무 허용을 늘리고, 일자리 나누기 문화 확산으로 대체 가능 유휴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도 동원되어야 한다.

지방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국가 소멸의 진원지는 당연히 지방이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주민이 깨어 있어야 하고, 자치단체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낼 수 있어야 재정 투입이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전남의 일부 기초자치단체나 일본의 지방에서 국가 출생률의 두 배 이상 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돈만 투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저출생 문제는 추락하고 있는 국가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성장 동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역동성 저하의 단면이다. 특히 한국의 출생률이 어디까지 떨어질 것인가는 세계가 주목하는 부끄러운 현장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나 각 정부 부처의 분산된 정책 대응으론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청년 일자리·부동산·복지 등을 동시에 다루지 않고 단선적인 접근만으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주요국들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이 40%에 달하지만, 한국은 최하위인 14%에 불과하다. 그래도 기업을 밖으로 내몰지 못해 안달이고, 나가 있는 기업이 둥지를 옮기더라도 국내 유턴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부동산 공급은 온갖 규제에 묶여 하세월이다.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만 국가가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저비용 고효율 사회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