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바이든·날리면’의 본질은 언론의 보도 원칙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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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16 06:31:10

지난주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합의 12부는 2022년 미국 순방 중에 있었던 MBC의 대통령 발언 보도에 대해 외교부가 제기한 정정보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외교부는 사실과 다른 MBC 보도 때문에 하락한 외교 신뢰도 회복을 이유로 정정보도를 청구한 바 있다. 실제로 당시 MBC는 미국 국무부에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대한 평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 외교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 발언은 기술적 분석으로도 명확히 밝힐 수 없는데, ‘바이든은’이라고 단정해 보도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또 “발언이 이뤄진 시각·장소·배경·전후 맥락, 그리고 발언을 직접 들은 장관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을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판결에 대한 반응은 양극화된 한국 사회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여·야 간에 평가가 상반되는 것은 물론 언론사들의 시각도 확연히 대비된다. 보수성향 언론들은 대체로 당연한 판결이라는 입장이지만 친야 또는 진보성향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나 언론탄압 같은 용어로 비판하고 있다.

여러 진보성향 매체에서 제기된 비판적 시각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바이든은’이 맞다는 주장이다. 이는 각각에 내재된 정치적 편향성에서 나온 주관적 평가에 가까워 새삼 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주로 정파성이 강한 인터넷 매체들이 이를 제기하고 있어, 확증편향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위험성은 있다.

또 다른 비판은 전문가들도 확인할 수 없고 법원도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한 상태에서 MBC 보도만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인 간의 사적 대화일 경우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 하물며 공영방송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영방송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확인 혹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은 보도해서는 안 되는 높은 수준의 취재 윤리가 요구된다. 객관성이나 공정성 같은 원칙들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물론 보도 주체인 기자들도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이다. 언론사들이 다층적 게이트키핑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인터넷 매체나 유튜버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특히 언론사들은 객관성 구현 방식으로 사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MBC의 ‘바이든은’ 보도도 내부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면 설사 확실한 심증이 있었다 하더라도 보도될 수 없었을 것이다. “특종은 못 해도 되지만 낙종은 안 된다”는 언론계 격언처럼 검증되지 않아 보도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검증 안 된 사실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비판은 어쩌면 가장 문제가 심각한 시각이다. ‘바이든은’이든 ‘날리면은’이든 대통령 발언으로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전자라면 우방인 미국을 비하하는 것이 되고, 후자라면 우리 국회를 비판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MBC 보도가 팩트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 잘못된 보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 논리라면 틀린 사실 혹은 거짓된 사실을 가지고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도 용인될 수 있다.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데 구체적인 근거의 오류는 부차적 문제라는 합목적적 주장이다. 이것은 좌파 언론들이 주장해 왔던 ‘진실과 객관 보도의 늪에 빠져 헤매지 않는 정론에 충실한 정론 보도’와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것이 약간의 허위사실들을 사실적 내용들과 섞어 진·위 판단을 어렵게 해 효과를 보는 가짜뉴스와 같은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가짜뉴스들이 국회라는 방탄막 아래에서 난무하는 허위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를 정파성에 함몰된 기성 매체들이 1차 유포하고, 같은 정치 성향의 유튜버들이 가짜뉴스로 확대·재생산시키고 있다. 한국의 가짜뉴스 카르텔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성 언론을 축으로 형성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판결이 정상적인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붕괴된 공영방송의 보도 기능 정상화를 위한 첫 번째 사법 판단이라는 점이다. 이제 정치적 독립을 명분으로 정치적 보호막 아래 편파보도의 수렁에 빠져 있는 공영방송이 본격적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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