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다시 불붙은 글로벌 첨단 제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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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어 각국 IRA 등장에도 한국은 무신경
세계 꼴찌 딱지 누적되는 역주행 언제 멈춰지나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26 06:31:30

코로나19로 3년 가까이 중단되었던 글로벌 첨단 제조 경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주요 각국이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고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정책적 인센티브 확대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보더라도 본질적인 차이는 크게 없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반대편 서방 국가들의 경계심이 갈수록 확대되는 분위기다. 공급망 재편의 콘텐츠에 기존의 상품이나 기술에 더해 에너지나 광물과 같은 자원이 포함되면서 경쟁의 양상이 훨씬 복잡해지는 판세다. 코로나19가 끝나면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면서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공급망 재편 경쟁이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국가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이라는 생소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2년 8월 도입한 이 법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보조금 지급을 통해 제품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인데 미국 내에서 전기차·배터리·에너지 등을 생산하는 업체가 대상이다. 이 법안의 목적은 당연히 이 부문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중국 제품의 미국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겉과 다르게 속내는 미국의 첨단 제조업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첨단 제조생산 세액 공제(AMPC·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Credit)’를 통해 배터리·태양광·풍력·핵심 광물을 생산해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판매 물량에 따라 보조금을 준다. 중국 기업이나 중국과 연관된 기업이 제조한 제품에 대해선 보조금 혜택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결국 미국에서 첨단 제조 제품을 팔려는 기업은 중국 등 미국과의 경쟁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팔려고 하지 말고 미국에 들어와 제조 활동을 하라는 강력한 압박 수단인 셈이다. 실제로 이러한 조치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이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을 한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전기차·배터리·태양광·풍력 제조 투자를 하여 세액 공제 혜택을 받는 중이다. 중국 제품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의 처지에서 보면 미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안 없는 선택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투자는 외면하고 미국 등 해외에 천문학적으로 투자하는 현상을 보면 씁쓰레하다. 글로벌 첨단 제조 경쟁에서 한국은 변방의 사각지대에 있지나 않은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럽의 프랑스도 미국의 IRA 법과 유사한 ‘녹색 산업법’을 발효시켰다.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상륙으로 초토화되고 있는 프랑스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과 다르게 한국산 전기차까지 직격탄을 맞아 불똥이 떨어졌다. EU 역내에서 생산한 전기차(22개 브랜드·79개 차종)에 대해 대당 700만〜1000만 원 상당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체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코니만 포함되고, 한국산 기아의 니로나 쏘울 등은 배제됐다. 협상의 여지는 있지만 되살아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최근 일본까지 일본판 IRA에 시동을 걸었다. 전기차와 배터리·반도체 등 5개 전략물자를 일본 내에서 생산·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2024년부터 10년간 법인세를 최대 40%까지 감면한다. 전기차에 대해선 대당 40만 엔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을 틈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쟁이 미국·프랑스·일본에 이어 도미노처럼 번질 조짐이다. 첨단 제조업 육성은 물론이고 에너지나 광물 등 전략 물자에 이르기까지 자국이 가진 것을 지렛대 삼아 상대적 우위를 점유하려는 시도들이 넘쳐날 것으로 예상된다. 보조금에다 각종 세제 혜택을 통해 본국 기업은 밖으로 나가지 않게 묶고, 밖에 있는 기업은 안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때 미국의 ‘러스트 벨트’로 쇠락하던 자동차 공장 도시 디트로이트가 배터리·자율주행 첨단 시설의 메카로 부상 중이다. 실리콘밸리를 넘어 스타트업 도시 1위가 되어 글로벌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가 국내에선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마치 다른 별세계에 사는 듯하다. 저질 정치가 국민을 우롱하고, 정부의 무능은 국가의 기능을 계속 후퇴시킨다.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수온이 계속 올라가는 데도 뛰쳐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위축되다 보니 양질의 청년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고 세계 1위 저출산 국가라는 불명예 딱지를 달았다. 마침내 노인 빈곤율도 OECD 1위가 되어 자고 일어나면 세계 꼴찌가 누더기처럼 달라붙는다. 정치 새판을 짜고 있다지만 판에 몰려드는 인물들을 보면 국가를 위기에서 끌어낼 자질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나라 걱정하며 정치에 입문한 초선 경제 전문가마저 미래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아수라판에 실망하고 자리를 내놓는다. 거꾸로 가는 국가에서 나올 수 있는 해괴한 현상들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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