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가짜뉴스 규제는 언론개혁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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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24 06:31:30

이미 가짜뉴스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골칫거리를 지나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달에 문화나 법·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지체(cultural lagged)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챗봇 같은 더욱 지능화된 첨단기술들까지 이용되게 되면 자칫 사회 전체가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는 극심한 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

매체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신규 매체들은 예외 없이 초기 확산 단계에서 기존 권력 혹은 제도들과 충돌해 왔다. 16세기 무렵 처음 등장한 신문은 절대왕권의 압박에 저항하면서 지금 같은 자율성을 획득하였다. 방송 역시 시청각 매체가 지닌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처음부터 더 엄격한 법적 규제를 받았지만 사전검열 같은 전근대적 내용 규제는 면제받는 형태로 정착되었다.

이처럼 언론매체에 대한 규제 체제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기능성과 사회·문화적 규범들 간의 일종의 신사협정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대중매체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20세기는 언론의 자율성과 다양한 외부 규제가 균형있게 공존하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언론법학자 리 볼린저(Lee Bollinger)의 주장처럼 매체가 등장한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강한 규제를 받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받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기반의 인터넷 매체들은 그런 공생의 규범이 정착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종이신문이 대중신문으로 성장하는 데 무려 200년 이상 걸렸다.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방송매체가 신문을 넘어 지배적 매체로 자리잡는 데도 30~4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기간은 각각의 나라들이 자신의 정치·사회·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언론규제 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인터넷 매체들은 언론매체라는 타이틀조차 거부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들은 물론 구글·네이버 같은 플랫폼들도 언론으로서의 책무와 무관함을 강변하고 있다. 이것은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명분이었던 자율 규제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매체들을 압도해 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미 미디어시장에서의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이 때문에 모든 나라들에서 인터넷 미디어들도 기존 언론매체들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호주·캐나다는 이미 인터넷 매체에 대한 법적 규제를 실시하고 있고, 유럽연합도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따라 인터넷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불법·허위·유해 콘텐츠들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관련해 X(옛 트위터)가 가짜뉴스를 계속 방치하면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규제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정치권에서 무수히 제기되었던 가짜뉴스 규제 목소리는 솔직히 말하면 ‘정파적으로 반대 언론에 대한 정치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법·제도 마련을 위한 구체적 논의나 실질적 조치들은 거의 없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기존 언론들까지 가세해 가짜뉴스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와 PD수첩,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부실 수사 관련 보도를 한 JTBC 뉴스룸에 대해 과징금을 부여하고, 편파적인 시사프로그램들을 법적 제재 조치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결정은 한국의 가짜뉴스 숙주가 특정 정파와 결탁된 편파적인 기성 매체들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이 결정에 대해 민언련·참여연대 같은 단체들이 언론탄압 혹은 겁박이라고 비난한 것은 우리 언론 지형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또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정치권력과 유착된 편파 언론 그리고 강한 정치 성향을 지닌 시민단체들이 연계되어 확대 재생산되는 카르텔 구조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가짜뉴스를 척결하기 위해 온라인 매체들에 대한 규제 도입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극도로 왜곡된 기존 언론의 정상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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