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괴담과 가짜뉴스가 과학을 억누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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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8 06:31:30

광우병·천안함 격침·세월호 침몰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까지. 2008년 이후 한국의 좌파 세력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왔던 괴담들이다. 이 괴담들은 언론이 퍼 나르면서 가짜뉴스로 확대 재생산되어 정치적으로 큰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괴담은 이명박정부를 초기에 강타하여 정치적 동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지금도 야당과 좌파 진영에서는 천안함 격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 남한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엄청난 국고를 낭비해 가면서 몇 년에 걸친 조사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침몰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근거 없는 의혹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들 괴담, 아니 가짜뉴스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과학적 사실이나 실증적 조사 결과들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우병 파동을 촉발시킨 MBC의 PD수첩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주장에 맞는 내용들만 교묘하게 짜깁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의도를 갖고 만든 가짜뉴스라 할 수 있다. 천안함 격침이나 세월호 침몰 역시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들을 전면 부정하고 온갖 음모설을 제기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역시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에도 야당과 좌파 진영의 공세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어 보겠다는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인다. 아직 방류하지도 않은 일본 바닷물과 생선을 갖고 공세를 펴며 “차라리 똥물을 마시겠다”는 선동적 발언은 과학적 근거와 아주 거리가 멀다.

이처럼 과학적 근거를 부정하는 괴담이나 가짜뉴스들이 창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짜뉴스라는 것이 바로 드러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가짜뉴스의 속성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짜뉴스는 ‘(상업적·정치적 목적으로) 허위 혹은 가공의 사실들을 진짜 언론사의 뉴스처럼 위장해서 확산시키는 거짓 정보’를 말한다. 즉, 거짓 내용을 언론사라는 권위를 도용해 진짜인 것처럼 속이는 뉴스다.

그러므로 과학적 사실이나 근거를 부정하는 가짜뉴스도 국민들에게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었다는 내용도 시청자들 눈에는 과학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또한 김어준이 제작해 대박을 쳤다는 세월호 관련 영화에 나오는 침몰 원인 분석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과학적 담론과 괴담 또는 가짜뉴스 설명 방식의 차이다. 과학은 실증적 근거와 엄격한 해석을 거친 결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단정적일 수 없다. 반면 괴담이나 가짜뉴스는 미리 정해진 명제를 놓고 여기에 부합하는 사실들을 더해 가면서 확고부동한 사실로 만들어 간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겐 가짜뉴스나 괴담이 명료하고 확신 있어 보이게 마련이다. “IAEA가 일본 정부에게 매수되었다”는 주장은 확신에 차 보이는 반면 “후쿠시마에서 방류한 해수는 방사능 수치가 안전한 수준이고, 몇 년 걸려야 우리 수역에 돌아온다”는 주장은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학처럼 명증의 학문이 아닌 이상 어떤 과학자도 절대 진리를 확신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학은 도그마(dogma)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수용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언론들에게 과학적 진실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없다. 반면 괴담은 특정 결론을 단정적으로 확신해 주는 도그마 같아서 아주 좋은 보도 거리가 될 수 있다. 시쳇말로 영양가 있는 떡밥인 것이다.

이런 괴담과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정확하고 균형 있게 해설해 주는 기성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할 공영방송과 주요 매체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오히려 그런 괴담을 가짜뉴스로 만들어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16·17세기 과학혁명은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를 깨고 근대사회를 열었다. 만약 과학적 진실들이 정치적·종교적 도그마에 의해 부정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첨단 디지털 세상은 아마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괴담과 가짜뉴스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괴담이나 가짜뉴스가 과학적 지식을 부정하고 또 압도하는 사회는 결코 진화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 사회는 어쩌면 퇴보할 수도 있는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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