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한국형 워크族이 내세우는 만능 치트키 ‘인권’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허겸 정치사회부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6-23 00:02:40

미국 남부에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는 지역이 있다. 성경적 가치관을 충실히 따르는 주(州)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표현이다. 이곳에 자리한 애틀랜타시는 미국 민권운동의 성지 같은 곳이다. 이렇게 말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고향이자 주요 활동무대였던 곳이라고 말이다.

앤드류 영(91) 목사는 킹 목사와 동고동락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민권운동가다. 애틀랜타 시장과 유엔대사·연방하원의원 등 굵직한 정·관계 활동으로 미국인에겐 익히 알려진 저명인사다.

영 목사가 2018년 10월 연방수사국(FBI) 애틀랜타지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권 강연을 했다. 모처럼 귀한 행사에 초청받아 취재할 수 있었다. 유력 지역 일간지 애틀랜타저널과 AP통신·CNN·AL·몽고메리 애드버타이저 등 바이블벨트 각지의 기자들과 멀리서는 보수계열 워싱턴 이그재미너 취재진 등이 찾아왔다. 민권운동의 대부격인 셀럽이 연방 수사요원들을 상대로 강연한다는 콘셉트가 아마도 언론의 입맛에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강연이 끝나고 기자들이 줄을 서서 영 목사에게 1대1로 질문하는 시간이 마련됐고 기자 차례가 됐다. “인권(人權)과 신권(神權)이 갈등을 벌이면 궁극적으로 어느 편을 들겠습니까?”

다소 공세적인 질문을 건넸고 그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고개를 약간 숙였고 손으론 턱선을 살짝 감싸 쥐었다. 기자가 건넨 명함을 흘끗 보더니 돌연 한국과 맺은 인연을 소개했다. 지난해 서울에 다녀왔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감동했다는 게 요지였다. 기자는 망설임 없이 되물었다. “유신론자 목사로서 인권 활동을 해 온 당신에겐 인권의 가치와 신의 가치가 둘 다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돌아온 답변이라곤 “음… (well…)” 정도였다. 사실상 그는 침묵으로 마무리했다. 미간을 찌푸리진 않았다. 도리어 화답하듯 안색은 밝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아니, 못 한 것이었거나 내심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만약 사실이라면 무엇이 그에게 마뜩잖았던 것일까.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론 책상을 손톱으로 톡톡 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저명한 인권 활동가이자 목사인 그에게 인권과 신권의 충돌은 난제 아닌 난제였던 것일까.

인권을 강조하는 이들이 항상 놓치는 게 있는 것 같다. 인권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아프리카 정글에 나 홀로 있다 치자.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가 다가온다면 마냥 인권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아무리 인권을 앞세운다 한들 맹수에겐 소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인권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보는 게 맞다. 상대가 있다면 배려도 있어야 한다. 나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이웃의 인권을 짓밟을 순 없는 노릇이다. 상대성이 있으면 진리(眞理)에 범접할 수 없다. 적어도 진리는 상대적이지 않아야 한다. 양립 가능한 또 다른 해석이 있어선 안 될 영역이다.

인간의 존엄성도 본질적 해석은 비슷하다. ‘존엄하다’는 것은 대단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 존엄하게 여겨 주는 대상이 있어야 비로소 존엄함을 ‘인정’ 받게 되는 이치다. 유신론자에겐 그 누군가가 신(神)인 것이다. 인간 스스로 존엄하기란 불가능하다. 맹수 앞에서 인권을 운운하는 게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인 것처럼 말이다.

마치 사상의 자유와도 흡사한 궤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일은 자유롭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입 밖으로 표현하는 순간부터 제도와 관습·사회적 통념에 묶이게 마련이다. 이렇게 예를 들어 보자. ‘교사를 강간(성폭행)하겠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자유가 학생에게 있을까. 그걸 자유의 한 형태라고 온전히 명명할 수 있을까. 사상의 자유로부터 파생됐기 때문에? 당연히 없다. 시쳇말로 그건 선 넘은 방종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사회적 통념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이 안쓰럽다. 발전 세력의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려는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한국형 워크(woke)족이다. 영어 ‘Woke’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의식화·사상화’쯤 되겠다. 건국이념을 외면하고 안보의 틀을 허무는 데 혈안이 된 이들로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연 세상은 나아지고 있을까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적어도 성경적 가치관에 따르면 세상은 갈수록 악해진다고 한다. 성경적 가치관이 옳다는 쪽에 손을 든다.

이민 생활을 마치고 최근 귀국했다. 그 사이 강산이 한 번 반 바뀌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그 시간의 앞뒤 차이가 기자에겐 너무 도드라져 보인다. 애석하게도 고국, 대한민국은 바람직하게 바뀌어 온 것 같진 않다. 양적 성장을 이룬 반면 존립 기반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마치 모래 위의 성처럼 말이다.

허겸 정치사회부장 k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