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64] 다음은 결혼의 마지막 정차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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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과 축포와 기념 촬영이 없는 이혼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30 06:30:10

“강무훤 씨. 은수정 씨.”

계단 위로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법원 직원이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운전면허증도 되나요?”

열 평 남짓 되어 보이는 법정엔 판사와 보조 판사 그리고 서기가 있었다. 서기가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요청했을 때 아내가 물었다. 나는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확인한 뒤 판사가 물었다.

“이혼에 합의하셨습니까?”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네” 하고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음성이 경쾌하게 들리기까지 해서 힐끗 아내를 쳐다보았다. 숙려 기간을 보내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내는 나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판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도 정면을 향하고는 “네” 침울해 보이지 않으려고 힘주어 발음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남편과 아내가 될 것을 맹세합니까?”

결혼식 날 주례가 물었을 때 나는 결혼식장을 들었다 놓을 만큼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해서 하객들을 웃음 짓게 했다. 아내 또한 몇 년 후 깨질 약속이라는 예감이나 어떤 의심도 없이 다소곳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네” 하고 다짐했다. 주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신랑 강무훤 군과 신부 은수정 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주례의 선서가 끝나고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나는 대한 독립 만세! 하고 외치듯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려 크게 소리쳤다.

“야호, 은수정은 완전히 내 거다!”

그로부터 5년 뒤, 판사가 공표했다.

“이혼이 성립되었습니다. 서류 받고 가시면 됩니다.”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객도, 행진곡도, 축포와 기념 촬영도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가루눈이라도 금방 쏟아낼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길고 긴 주례사와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인사와 편지 낭독, 가수를 뽑는 오디션 장인가 싶게 바통을 이어 계속되는 축가 릴레이, 신랑의 힘자랑 이벤트. 결혼식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다.

차가운 바깥 날씨와 달리 실내는 불쾌할 만큼 덥고 건조했다. 겨우 견디고 있는 어른들을 대신해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어디선가 갓난아기의 예민한 울음이 터졌다. 소방차나 구급차의 사이렌처럼 아기가 생존을 보장받고 싶어 내지르는 강렬한 신호는 특히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운 역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홀 건너편에서 남자가 품에 안은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남자가 토닥거렸지만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한겨울, 사람이 많은 장소에 데리고 나오기엔 아직 이른 생명이었다. 옆에 있던 어린 여자가 가방을 뒤져 서둘러 우유를 타고 젖병을 흔들었다.

“결코 끝나지 않아요. 멈추고 돌아보는 순간, 지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죠.”

하운은 흠칫, 뒤로 물러서더니 끄응, 하고 가늘고 긴 숨을 토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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