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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용어 중에 ‘굴기하심(屈己下心)’이란 말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 자기 자신을 굽히고 마음을 겸손하게 갖는 것, 스스로 잘난 체 하지 않고 늘 부족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높여주는 것을 말한다. 지극히 도인에 가까운 경지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하심만 따로 분리해도 의미는 같다.
보통 사람이 웬만해선 하심의 경지를 갖기가 어렵다. 3년 이상 묵힌 메주를 우려내 만든 간장이나 된장처럼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웅숭깊게 우러나와야 한다. 경력직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갓 결혼해 시집을 가거나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하면 영락없이 ‘신고식’을 당하게 마련이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새 신랑은 처가 동네 총각들한테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발바닥을 맞아야 했다. 동상예(東床禮) 풍습이다. 마을 처녀를 도둑질해간 놈이라고 하면서 발바닥을 북어나 장작으로 팼다. 물론 악의 없는 매질이지만 때론 맘에 둔 처자를 빼앗긴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어 불상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새 신랑은 매를 맞으며 처가 동네 사람들과 친해진다. 일종의 하심의 발로다.
숱한 신화와 사연을 낳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예로부터 사연의 보따리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자식을 독차지하지 못하게 된 신랑 어머니의 원초적인 자식 사랑이 원인인지라 사랑의 대상을 빼앗긴 어머니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하랴, 며느리 입장에서는 신랑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여기 매우 현명한 며느리가 있다. 똑똑한 며느리를 얻은 시어머니가 초장부터 길들이려 시도했다.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느냐” “대학은 허투루 다녔느냐”며 툭하면 지청구다. 그럼에도 며느리는 “제가 모르는 것이 많아요,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 “요즘 대학 나왔어도 옛날 소학교 나온 것만 못해요, 어머니”하고 자세를 더 낮췄다.
매사 이런 식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찔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권투에서 맷집 강한 도전자 만나 신나게 때리고도 지쳐 패하는 것처럼, 혼을 낼 때마다 낮은 자세로 나오는 며느리를 더 이상 갈굴 명분을 잃었다. 외려 불안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내가 졌다. 앞으로 집안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하고 살림을 넘긴다. 하심의 위력이다. 조정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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