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은행은 언제까지 ‘안전 대출’로 배만 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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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18 00:02:30

은행 광고에서 우산을 쉽게 볼 수 있다. 우산이 비를 막아 주는 것처럼 은행도 우리가 돈을 급히 필요로 할 때 대출해 주겠다는 의미를 담은 ‘메타포(은유 기법)’일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경제가 어려울 때 은행은 자금이 절실한 이들에게 돈을 더 빌려줘 우산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떼일 것을 염려해 자금이 넉넉한 이들에게 대출을 더 해 줬다.

3분기 실적을 보면 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중소기업 원화대출금은 9월 말 기준 약 645조 원으로 1년 전보다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대기업 원화대출금을 25% 늘린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소상공인·개인사업자 등에게 내주는 소호 대출은 더 심각했다. 1년 새 2% 증가했을 뿐이다. 일부 은행은 이를 감축하기도 했다.

돈을 빌려준다고 해도 담보·보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중 담보·보증 비중은 2015년 말 66.7%에서 2022년 말 79.2%, 올해 9월 말 80.7%로 상승 추세다.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중소기업에는 부담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4.4%로 1년 전보다 0.6%p 저하됐다. 이 기간 영업이익률이 3.3%p 올라간 대기업(6.6%)과 대비된다. 대출도 절실했다. 또 다른 한은 조사에서 3분기 중소기업 대출 수요(22p)는 전보다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다. 대출 수요가 1분기부터 지속 줄고 있는 대기업과 달랐다.

은행이 중소기업을 외면한 것은 연체율 관리를 위해서다. 금융의 본질은 신뢰인데 연체율이 올라가면 신뢰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중소기업을 외면한 것이다. 호들갑 아닌가. 5대 은행 연체율은 모두 0%대다. 대출 여력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하나 같이 대기업 위주로 대출을 내준 것을 보면 은행 간 연체율 경쟁 또는 암묵적인 ‘담합’으로 볼 수 있다.

은행이 ‘안전 대출’을 추구하는 경향은 가계대출에서도 나타난다. 9월 말 주요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등의 합계 규모는 약 577조 원으로 1년 전보다 120조 원 이상 불어났다. 반면 신용대출 등 일반자금 대출은 약 216조 원에서 약 213조 원으로 3조 원 줄어들었다.

신용대출조차 신용 900점 이상 차주에게 내줬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 17곳의 일반 신용대출 차주의 신용점수는 평균 900점이다. 800점대는 3곳에 그쳤다. 고신용자 기준이 870점 이상(신용평가사 나이스지키미 기준)인 걸 고려하면 중·저신용자를 사실상 배제한 셈이다.

은행은 민간기업이지만 허가받아야만 영위할 수 있는 규제 산업이라 공공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전후 대출 이자를 통해 호실적을 거둔 것도 규제 업종이라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혜’였다.

이제는 안전 대출에서 벗어날 때다. 기업대출은 회사 재무적 성과를, 가계대출은 담보·보증 유무를 보고 판단해서는 ‘이자 장사꾼’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회수 가능성을 넘어서는 대출 심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금리 인하기를 맞은 가운데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에 적극 대출 지원을 해 침체에 빠진 우리나라 경제를 끌어올리는 첫 단추를 꿰어 주길 기대한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