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36] 천 명의 승객, 한 명의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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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청량리행 열차 안에서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2 06:30:10

밥알 꾹꾹 눌러 굴린 김밥 같은 열차. 지하철 한 칸당 태울 수 있는 정원은 160명이지만 러시아워에는 언제나 두 배 이상 초과하곤 했다. 자신이 타면 옆구리 터질 것 같아 한 대·두 대 그냥 보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어이 몸을 밀어 넣어 여러 번 문을 여닫게 만드는 이도 꼭 있었다. 초 단위로 짜여 있는 운전 스케줄은 번번이, 출입문이 닫히는 순간 계단을 숨 가쁘게 뛰어 내려와 슬라이딩하는 승객들로 인해 어긋났다. 뒤쪽에 승무 차장이 없는 상태에서 기관사는 혼자 열 개의 차량, 즉 마흔 개나 되는 출입문의 안전 상태를 눈과 모니터로 확인해야 한다.

가방이나 옷이 문틈에 낀 상태에서 출발했다며 터지는 불만들. 테러와 같은 비상시를 위해 준비된 객실 비상 통화 장치를 붙들고 춥다 덥다 불평하는 사람들. 토사물이 있어요, 신고하는 승객들. 밀고 밀리는 상황에서 실수나 고의로 밀착되는 몸과 몸. 뒤섞이는 숨결.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는 재빠른 손과 수치스러운 수컷들의 손.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사태가 생기면 지하철 관제사와 통신으로 상의하고 상황실에서 지시한 대로 처리했다. 때로 지하철 보안관이 출동하기도 했다. 그래도 승객 1000여 명의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기관사 한 사람에게 떠맡겨졌다.

“현재 열차 내 온도는 26℃로 적정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조금 춥거나 더우시더라도 승객 여러분의 양해를 당부드립니다.”

“퇴근 시간 열차가 매우 혼잡합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승차 예절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사고가 없길 바라는 절박한 긴장 상태. 그때마다 반복되는 안내방송. 그러나 누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까.

2003년 이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던 여덟 명의 기관사가 자살에 이른 이유가 이러한 근무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기관실을 나올 때마다 오늘 하루도 죽지 않고 살아 냈구나, 안도하며 지상으로 올라오곤 했다.

1호선 열차 안의 승객들도 저마다 따로 존재했다. 그래도 의자 밑에서 나오는 더운 히터 바람과 타인들의 숨결이 야외 플랫폼에서 식어 버린 체온을 천천히 덥혀 주었다. 옆에 앉은 커플은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서로의 피부를 쓰다듬고 비비고 마찰시켰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다리를, 허벅지를, 허리와 등과 어깨를 넘나들며 더듬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길고 풍성한 머릿결이 전등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여자가 남자의 손과 팔과 어깨를 쓰다듬었다. 코와 턱과 이마와 뺨에 입을 맞췄다. 낮은 신음처럼 남자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킥킥 웃었다. 오직 세상에 둘만 남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들을 더욱 대담하게 하는 것은 안 보는 척, 흘끔거리는 타인들의 시선이었다.

나도 아내를 만지지 못해 안타까운 날들이 있었다. 만지고 쓰다듬고 입 맞추고 마주 잡던 시간들은, 그러나 빗물처럼 흘러 미끄러지듯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문득 하운이 그리웠다. 하운과 나누던 아침의 첫 입맞춤. 나를 전율시키던 순간이 떠올라 흠칫 몸을 떨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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