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지금 ‘노란봉투’는 그때 노란 봉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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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22 00:02:40

월급을 봉투에 현금으로 넣어 주던 시절이 있었다. 노란색 마분지로 된 월급명세서에는 본봉과 수당, 그리고 각종 세금 등이 적혀 있었다. 지금 나이로 50대 중반 이상의 월급쟁이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월 한 번씩은 받아 봤을 법하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받는 노란 봉투는 삶을 유지하고 가정을 지탱해 주는 원천이었다. 봉투를 열어 돈을 세어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즐거움과 아쉬움이 서린 노란 봉투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추억거리로만 남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노란 봉투’가 2023년 초겨울 우리 사회에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4건의 노란봉투법이 발의돼 11월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야당 단독으로 국회 문턱을 넘은 이 법에 대해 이달 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법의 명칭은 과거 쌍용차 사태로 생겨났다. 2014년 법원에서 쌍용차 사태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47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액 청구 판결을 내렸다. 이후 한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4만7000원이 담긴 성금을 전달했고 그것이 시민들의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이어지면서 15억 원에 가까운 돈이 모금됐다. 과거에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단 점에 착안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월급을 받아 다시 일상을 회복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진 이름이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로 확대해 도급 사용자 업주까지 포함시켰다. 노동쟁의 개념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확대했다. 또 노동조합의 행위로 기업이 손해를 보더라도 손해배상액 상한을 조합원 수나 재정 규모 등을 고려해 설정토록 해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했다.

이 법의 문제점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및 결정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급’이라는 민법상 계약의 실체를 부정한다.

민법상 도급이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도급계약에서 수급인(용역회사)은 일의 완성을 위해 직접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 이때 고용된 근로자는 수급인이 지시한 업무를 수행하며 도급인은 수급인의 근로자를 지휘명령하지 않도록 돼 있다.

야당에서 밀어붙인 노란봉투법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원청 대기업을 노사관계 당사자로 끌어들여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 대상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노동쟁의의 개념을 확대하고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 또한 우리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독소조항이다. 원청업체에 대한 파업을 정당화하고 노조의 극단적인 불법 파업 행위를 과도할 정도로 보호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분별한 쟁의행위는 잦아지고 기업들은 이런 것에 지쳐 외국인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고 보호해 우리 경제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행법 안에서 소외되는 부류가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노사관계에서 어느 한쪽에 힘이 쏠린다면 사회적으로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동안 일부 노조에서 벌여 왔던 파업 행태도 해당 법이 통과되면 안 된다는 정당성을 준다.

그동안 일부 급진 노조는 사용자와의 소통은 무시한 채 무력이나 불법 행동을 서슴없이 해 왔다. 대화 노력이나 합의점을 찾아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일단 파업부터 벌여 보자는 식이었다.

얼마 전 민주노총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이란 구호를 앞세워 2주간 총파업에 나선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정권 퇴진·노동개혁 저지·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 등이었다.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은 없고 뜬금없이 정권 퇴진이나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 같은 것이 총파업의 명분이 됐다.

일반 시민들이야 불편을 겪든지 말든지 집단의 힘을 앞세워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이들에게 노란봉투법 통과는 파업을 밥 먹듯 하도록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이 창출된 데에는 노동계와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가 컸다. 야당은 이들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간 노조의 강경 기조로 결국 애꿎은 시민들에게 불똥이 튀고 국민의 피로도도 극에 달했다. 최근 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계에 기분 나쁘면 걸고넘어지고 무책임한 파업을 하고도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만능 칼자루를 쥐어 주는 꼴이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이 위험한 이유는 악인들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고 했다. 이제는 국민 무섭다는 걸 보여 줄 때다.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