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옥칼럼] 정치권은 ‘체코 원전 수주팀’에게 한 수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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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2 00:02:40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한마음 되어 기뻐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 4강 신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박지성·안정환·이영표·홍명보 등 축구 영웅들이 탄생하고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벅찬 순간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체코 원전 수주 소식을 두고 월드컵 4강 진출에 버금가는 쾌거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온 국민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의 불을 지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국익은 물론 국가 위상을 생각하면 월드컵 못지않게 국민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드높인 일로 평가되어 마땅할 것이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발전소 수주전에서 우리나라는 강력한 경쟁자 프랑스전력공사(EDF)를 꺾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무려 24조 원이라는 원전 수출 사상 최대 건설비가 걸린 이 경쟁은 그야말로 유럽 안방에서 세계 2위 원전 대국 프랑스를 꺾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프랑스는 체코와 같은 유럽연합(EU) 소속이면서 유럽에서의 원전 건설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한국보다 유리한 입장으로 평가됐다.

‘K원전’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한 성과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2·3·4호기 건설 수주 이후 15년 만에 올린 쾌거다. 그 배경에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산업 생태계 강화를 국정 과제로 채택한 윤석열정부의 노력이 있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후유증은 크다. 2017~2022년까지 탈원전 정책으로 22조9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했고, 2030년까지 추가 비용이 24조5000억 원이 예상되어 그 피해가 총 47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력 전문 인력도 2000명 이상 줄었고, 미래 원전 산업의 비전이 실종되면서 대학에서는 원자력공학 전공 학생들의 이탈이 줄을 잇기도 했다.

이번에 한국이 유력 후보였던 프랑스를 제치고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주축으로 한전기술·한국원자력연료·한전KPS·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 등으로 꾸려진 컨소시엄 ‘팀코리아’와 대통령·정부가 합심해 공을 들인 성과로 평가된다.

특히 팀코리아가 내세운 ‘온타임 위딘버짓(On-Time-Within-Budget)’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예정 시간에 맞춰 진행한다’는 이 전략은 체코 정부가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입찰과 관련해 약 20만 페이지의 문서를 검토한 체코 정부는 그 점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체코 원전 건설 예정지인 두코바니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 긴밀한 관계 구축이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6년부터 한수원 직원들이 자원봉사 대학생 등과 함께 현지에서 벽화 그리기·소외 계층 지원·공공체육시설 정비 등 지역 봉사 활동을 펼치며 주민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에 공을 들여 왔는데 결정적 순간에 지역 민심이 한국 한수원의 편에 서면서 판세를 뒤엎는 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성과를 가리켜 언론들은 24조 원짜리 ‘잭팟’이라는 비유를 쓰곤 한다. 하지만 카지노의 슬롯머신에서 숫자 7이 세 번 연속 나올 때 받는 최고 당첨금 ‘잭팟(Jackpot)’이 오로지 행운에 기대는 것이라면, 체코 원전 수주는 행운이라기보다는 우리 측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막판 수주전에 힘을 실었다. 또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밀 특사’로 체코에 파견해 양국 경제 협력을 강조하는 친서를 전달하도록 하는 등 막후 외교전을 펼쳤다. 안 장관은 체코를 3번 방문하고 산자부 담당 국장도 5번 다녀왔다고 한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민·관 합동의 유기적 전략으로 성공 신화를 쓴 이번 수주팀의 팀웍은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는 국내 정치권에서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이번 ‘체코 잭팟’으로 윤 대통령 지지율이 4%p 껑충 올라 29%를 기록했다. 온갖 특검법을 동원해 대통령 탄핵을 목표로 치닫고 있는 야당은 도대체 자신들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또 정당 대표라는 자리를 놓고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권 정치인들도 국민이 바라는 것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