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사이버 렉카’ 근절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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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2 00:02:30

가설을 하나 세워 보자. 당신이 횡단보도 무단횡단을 한 것을 누군가가 몰래카메라로 촬영하여 이를 얼굴과 이름에 목소리까지 가린 익명의 유튜브채널에 올렸다. 이 익명의 유튜버는 당신을 무단횡단 상습 교통 범죄자로 매도했고 해당 영상이 이곳저곳에 퍼져서 조회수 100만을 넘어섰다. 이 영상이 큰 주목을 받자 기성 언론에서도 ‘상습 무단횡단 범죄자’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직장과 가정에까지 이 사실이 알려졌고 회사에서는 영상으로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심하니 무단횡단을 하게 된 경위서를 쓰라며 징계를 예고했다. 너무나도 억울한 마음에 유튜버를 고소하려 했다. 하지만 해당 유튜브 채널에 관해서는 메일 주소 하나가 공개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은 고소할 수 있는가. 렉카 처단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제도권 언론에서 수년간 취재 활동을 하며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 보도의 무게를 격감해 온 기자는 최근 ‘사이버렉카’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데 목소리를 모으는 검찰·언론을 경계한다. 이들 렉카들이 더욱 신원을 가리고 훨씬 더 자극적인 내용을 유포할 것이 눈에 뻔히 보여서다. 폭로 대가성 후원금은 텔레그램 마약 거래처럼 가상화폐로 하면 법망에 걸릴 이유도 없다. 게다가 AI가 방송을 대신해 주는 시대까지 도래했다.

약점이 영구 박제되어 익명의 제삼자들에게 널리 공유되고 조회수 장사의 먹잇감이 된 후 수천만 개의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것이 사이버렉카 문화의 본질이다. 모두가 인터넷망 기반의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소통하며 사생활을 공유하고 사는 세상에 등장한 신종 ‘러시안룰렛게임’이 아닐 수 없다. 사이버렉카는 검열 없는 정보전으로 기성 언론 권력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그런데 사실상 완전한 처벌도 근절도 불가능한 시스템을 법의 잣대로 처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렉카 문화를 제도화해야 한다. 처벌만이 답이 아니다. 매춘을 금지하면 음성화하고, 성병이 퍼지면 잡지도 못하는 꼴을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한 시사 유튜버는 단언했다.

“실명 활동하고 있는 사이버렉카들 다 잡고 나면 목소리에 얼굴까지 가린 사이버렉 카들이 등장할 거다. 최악의 경우에는 디지털 성범죄가 유포되어도 서버가 해외에 있으면 신원을 파악해도 잡지 못한다. 실명 렉카들 때문에도 사건 피해자가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세상인데, 더 큰 재앙을 왜 기성 권력이 자초하는가.”

불행하지만 사실이다. 기자는 실명 공개 후 부와 명성을 얻은 사이버렉카들이 추락하는 과정을 꾸준히 지켜봐 왔다. 대표적인 게 사이버렉카 문화의 시초로 불렸던 김윾머(본명 배유근)이다. 반페미니즘·성별 갈라치기·여성 혐오 발언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심의와 규제 없는 발언에 갖가지 논란으로 2차 피해가 끝도 없이 양산됐다. 결국 2019년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여 채널이 영구 정지됐으며 이후 지속해서 채널이 삭제됐다.

‘공개 처형대’에서 처단당한 김윾머의 몰락을 목격한 후 유튜버들은 컨셉을 ‘혐오 조장’에서 ‘정의 구현’으로 잡았다. 이들은 사기당한 돈을 되찾아 준다거나, 제도권에서 풀리지 않은 학교폭력 문제 등에 개입하는 식으로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재 검찰의 수사 물망에 오른 구제역(본명 이준희)·칼라큘라(이세욱)·전국진 등이 있다.

지금 이들을 취재하는 동종의 렉카 채널을 최근 며칠 동안 낱낱이 살펴봤다. 이미 온라인 현상수배까지 됐으나 아직까지 신상조차 파악되지 않은 구독자 120만 명의 뻑가를 비롯해 대부분 이름과 얼굴에 음성까지 가린 이들이 확인됐다. 일부 콘텐츠에는 개인정보에 가족 신상과 비밀대화가 담긴 녹취 파일까지 편집 없이 원본으로 올라왔다. 이는 사회적 살해나 다름없는 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이 같은 권력을 부여했는가.

특히 익명의 유튜버는 신고가 까다롭고 수사와 검거는 불가능에 가깝다. 기자는 복수의 렉카 피해자를 수년 동안 만나며 이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렉카 문화를 근절 가능한 건 사실상 이들 정보전의 가장 큰 수혜자인 플랫폼 사업자다. 그들이 나서야 한다. 렉카가 대중문화가 됐고 기성 언론만큼 영향력이 생겼다면 이제는 양질의 생태계로 개혁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