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40] 당신과 있는 게 좋아요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와 단둘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6 06:30:10

“나하고 약속한 거 잊지 않았죠?”

하운이 나를 마주 보며 다짐을 받았다.

“나 자신을 믿는 것.”

“그래요. 지나간 건 잊으세요. 아직 오늘 밤과 내일이 남았잖아요. 그리고 나는….”

하운이 내 목에 맨 타이를 반듯하게 매만져 주며 말했다.

“당신과 있는 게 좋아요.”

하운이 미소 지었다. 마음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일까. 그녀의 한마디가 마음속 불안과 불만을 몰아냈다.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처럼 자신감이 불끈, 고개를 쳐들었다. 무한 긍정이나 달콤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카르페 디엠’이나 ‘케 세라 세라’를 외치며 오늘 밤 무책임한 낙관 속에 나를 내던져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운과 나는 방을 나섰다. 안대를 쓰지 않았다. 그녀의 방이 C2017호실인 걸 확인하고는 20층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처음 온 날, 창밖의 운무가 이해되진 않았다. 호텔처럼 여러 개의 객실이 마주 보고 있는 긴 복도를 지나 넓은 홀에 도착했다. 스퀘어 쇼핑몰 같기도 했고 공항 면세점이나 열차 플랫폼 같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명품을 전시 판매하는 상점들과 식당의 조명들이 눈부셨다.

사람들은 걷고 먹고 쇼핑하고 이야기했다. 벤치에 앉아 전화 통화를 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기도 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인 듯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낯익은 풍경이면서도 다른 나라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곳이 서울 어디쯤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지만, 트러스트 미 재단의 한국 본부이며 C구역은 재단 회원들을 위한 숙소라고 하운이 설명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는 조금 더 이상했다. 하운이 층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하나뿐이었다. 단층인가 싶었지만 엘리베이터는 한참이나 움직였다. 층을 표시하는 화면에는 아래위 화살표 대신 오른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점멸했다. 알파벳이 순서대로 바뀌었다. D, E, F. 10초쯤 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금발 머리의 외국인 남자가 탔다. 남자가 하운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내게도 살가운 눈인사를 건넸다.

“마이크.”

하운이 인사했다. 마이크란 남자도 하나뿐인 버튼을 눌렀다. H에서 엘리베이터가 섰다. 그가 내리고 문이 닫혔다. 올라갔다. 내려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화살표 방향대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나는 궁금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마이크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맞아요.”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내 생각을 읽은 하운이 말했다.

“순환 엘리베이터예요. 구간과 구간 사이 통로도 있지만 이곳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거든요. 여러 대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이동하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엘리베이터는 반대쪽에 있어요.”

“지하철처럼……?”

“자기부상열차처럼.”

“왜, 매번 문이 열리지 않은 거죠?”

“버튼을 누를 때 원하는 곳을 생각하면 돼요. 중간에 타는 사람이 없다면 직통열차처럼 논스톱으로 도착하기도 하죠.”

“그게 가능하다고요?”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