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32] 죽음의 문턱에서 빼앗긴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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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를 타고 손을 흔드는 아버지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16 06:30:03

아버지는 탐식을 죄로 여겼다. 평소 식사를 그렇게 맛있게 하는 걸 본 적 없었다. 아버지는 밥을 먹고 또 먹었다. 배가 부른 것도 잊고, 밥공기를 싹 비웠다는 것도 잊고, 거의 손대지 않은 내 밥공기를 욕심스레 쳐다보았다.

“더 드실래요?”

수줍게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도 대지 않은 내 밥공기를 아버지의 빈 그릇과 바꿔 놓았다. 아버지는 숟가락 높이 밥을 퍼 올려서 크게 벌린 입 속으로 밀어 넣고 우물우물 삼켰다. 고기를 입에 넣고 또 넣었다.

아버지는 이곳에 없었다. 절제와 근엄과 기도, 아버지가 평생 지켜 온 존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것일까. 내가 떠난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나보다 더 멀리 떠나고 있었다. 첫 번째 인간 아담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다마’는 흙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모든 생명은 흙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도 시간을 거꾸로 부여잡고 마른 흙으로 부식되어 덧없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식당 정원에 나무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네를 발견하자 냉큼 달려가 앉았다.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그넷줄을 꼭 쥐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뒤에 서서 아버지의 마른 등을 밀었다. 세게 민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높이 날아오른 아이처럼 신나서 다리를 흔들었다. 하하. 아버지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웃음, 내게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웃음이었다. 아버지는 자식의 그네를 밀어 주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또 그네 타러 와요.”

그네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끌다시피 해서 택시에 겨우 태웠다. 유리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버지가 그네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거 어디서 샀수?”

목과 머리에 열 개도 넘는 색색의 스카프를 겹쳐 두르고 나름대로는 한껏 멋을 낸 할머니가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내 머플러를 보며 물었다. 노파의 모습은 어린 시절 등굣길에서 내 뺨을 때렸던 그 이상한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가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요즘 사람들은 멋을 안다니까.”

내 목을 조여서라도 금방 빼앗을 기세였다. 마침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전화의 메시지 벨이 울리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8시 여의나루역에서 만나요.’

하운의 문자메시지였다. 통화라도 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을 것도 같은데 하운은 냉정하고 사무적이었다. 공적인 관계라 생각하면 사적인 느낌으로 다가왔고 이만큼 가까워졌나 싶으면 또 저만큼 멀었다. 문제는 나였다. 하운은 트러스트 미 재단의 일원으로 나를 케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일어나는 지금의 일들을, 아무런 설명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운뿐이었다. 그래서 기대하고 의지하고 제풀에 꺾여 실망했다. 거리를 느끼다가 조금만 다가오는 것 같으면 나 혼자 뜨거워졌다.

지금도 나는 아내와 달봉, 그리고 아버지가 몰아붙이고 있는 쓸쓸한 감정들을 그녀에게 풀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터뜨리면 추스를 수 없을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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