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실거주 의무 3년 유예’는 고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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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형 건설부동산팀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10 00:02:40

세계에서 매주 주택 가격 동향을 기관이 발표하고 언론이 보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믿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지만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주요 외신에는 집값 변화에 관한 기사 자체가 잘 나오지 않고 일주일 단위 데이터 보도를 찾기도 어렵다.

매주 집값만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읽어 내기란 웬만한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주식처럼 가격 흐름을 읽어 가장 유리한 주택 매입·매도 시점을 찾기 위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월간 통계로 충분하고 오히려 주간 통계가 시장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큰 변화 없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짧은 주기로 주택 가격 동향을 알리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주택 가격 변화에 민감하고 관심이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3월부터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가 3년간 유예됐다. ‘주택법’을 개정해 분양 아파트에 직접 거주해야 할 시작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후 3년 이내’로 완화했다. 이전까지는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당첨되면 2~5년간 직접 살아야 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70~80% 낮게 책정되므로 실거주 의무는 당첨자가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곧장 아파트를 되파는 전매나 제3자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집값을 치르는 갭투자, 즉 투기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둔촌주공(총 1만2032가구)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 ‘1.3 대책’을 통해 전매 제한 완화·거주의무 폐지·12억 원 초과 주택 중도금 대출 허용 등을 발표한 시점이 바로 둔촌주공의 계약일(1월3~17일) 첫날이었다. 당시 정부 조치를 두고 시장에서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위기 국면이던 부동산시장을 타개하기 위한 ‘둔촌주공 구하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실제로 둔촌주공 계약률은 시장의 우려를 깨고 예상보다 높은 81.1%(정당·예비 당첨자 포함)를 기록했고 3월 잔여가구 무순위 청약에선 899가구에 4만1540명 청약해 평균 경쟁률 46.2대 1을 기록했다. 당시 계약자들은 거주의무 폐지까지 포함한 규제완화에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고, 정부도 법이 개정되면 소급 적용을 약속한 바 있다.

새삼스럽지만 지난 정권의 부동산정책을 복기해 보자. 문재인정부는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중과했다. ‘주택 관련 세금 부담이 커지면 투기수요가 줄고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와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은 불어난 세금 탓에 집을 팔지 않았고 일부는 위장 이혼이나 혼인신고를 미루는 등의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했다. 또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대폭 강화했으나 신용대출로 우회하거나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갭투자’가 지속됐다. 이는 부양가족 수 가점을 채우기도, 대출 없이 집을 사기도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식됐다.

그 시절 다주택자는 ‘악(惡)’이었고 무주택자는 ‘선(善)’이었다. 이분법적 발상에 기인한 잘못된 원인 진단이었다. 다주택자가 선이 아니듯 무주택자도 악이 아니다. 그저 내 집을 마련하고 싶고 자산을 증식하고 싶은 여러 욕망이 시장에 존재할 뿐이다.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시행령 개정으로 전매제한을 해제하면서 야당의 반대로 법 개정이 필요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지 못했다.

전매제한이 풀려도 실거주 의무가 남아 있으면 현실적으로 집을 팔 수가 없다. 4.10 총선 전 다시 실거주 의무 폐지를 꺼냈다가 더불어민주당 등과 ‘3년 유예’에 합의했다. 정책적 필요성·일관성보다 정치적 고려·합의가 우선한 셈이다.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두 제도를 함께 폐지해야 했다.

이번 주택법 개정을 두고 주거복지 관련 시민단체들은 실거주 의무를 넣은 2021년 2월 개정안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반대로 실거주 의무가 부모 봉양이나 자녀 교육 등의 사정으로 곧장 이주하기 어려운 실수요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정부의 ‘집값 폭등’ 등 정책 실패에 크게 기대 정권을 잡았다. 그런 정부가 일관된 주택 정책을 펼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과 정치적 필요에 따라 표변한다면 시장을 안정(또는 활황)시키기도 민심을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학형 건설부동산팀장 hh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