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옥 칼럼] 中 ‘과학 굴기’ 도와주는 정신 나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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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08 00:02:40

과학 연구 분야 세계 1위 국가는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미국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중국이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네이처 인덱스’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가 2016년부터 국제 유력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을 바탕으로 발표하는 연구기관 순위다. 우리나라는 2020년 9위에서 2021년 8위로 오른 후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학술지 발표 논문 수준이 곧 현재 각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 논문 성과는 과학기술 실현의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이는 향후 해당 국가의 과학기술, 나아가서는 미래의 국가 위상을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인공지능(AI)·반도체와 양자기술 등 소위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분야에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 ‘네이처 인덱스’ 발표를 놓고 보면 첨단 과학기술 분야를 놓고 벌이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성큼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두드러진 진격의 배경에는 이과 출신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있다. 시진핑은 2016년 5월30일 중국 과학자 4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신중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을 전 세계 과학기술 선도국으로 만들겠다”며 ‘과학 굴기’를 선언했다. 이후 중국은 서방국가의 하청을 받아 물건을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에서 탈바꿈해 AI·빅데이터·우주항공 등 첨단기술 분야는 물론 기초과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진핑의 과학 굴기를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다. 3월 열렸던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 ‘양회(兩會)’에서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정부 지출 주요 분야 중 가장 큰 폭으로 늘려 총 520억 달러(약 71조 원)를 반영하는 등 과학기술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 놓은 것이 그 한 예다. 우리 정부가 이와 반대로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했던 일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약 14억이라는 엄청난 인구도 중국의 과학 굴기를 뒷받침하는 요소다. 과학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력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막강한 경제적 지원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무섭게 과학 굴기의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중국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관심을 모으던 ‘과학 여신’의 행보가 그 좋은 예다. ‘최연소 중국 칭화대 교수’ ‘중국 과학계의 여신’으로 불리는 세계적 생명과학자 옌닝은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명문 칭화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석·박사학위 받았다. 그 후 2007년 30세의 나이로 최연소 칭화대 정교수에 임명된 옌닝은 10년 후 프린스턴대로부터 종신 교수직을 제안받고 미국행을 택했다. 그랬던 그가 5년 만에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중국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옌닝이 중국으로 돌아온 것은 중국 선전시가 2025년 개원을 목표로 설립 중인 의학전문 연구기관 ‘선전 의학과학원’의 초대 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서였다. 중국은 이 기관을 2050년경까지 세계 최고 의학 연구시설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며 성공을 기원한다”며 옌닝의 귀환을 반겼다. 또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도 “나의 여신 옌닝, 집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조회수 4억4000만 건을 기록하며 과학자의 귀환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다.

이 같은 중국인의 관심과 성원에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과학자로서 옌닝의 출중한 면모가 한몫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하지만 미·중 간 과학기술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인재 확보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국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최근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올 여름 중국 베이징 수리과학및응용연구소(BIMSA)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리 과학계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부원장은 ‘초끈이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그가 올해 65세 정년을 맞았다는 이유로 국내 연구기관에서는 받아 주는 곳이 없어 중국행을 선택한 것이다.

귀한 국가적 자산인 과학 인재를 정년이라는 규정을 내세워 외면하는 한국과 나이·국적 따지지 않고 능력을 보고 불러들이는 중국, 두 나라 과학의 미래가 천지차이로 벌어질 것은 불 보듯 환한 일이다. 더 많은 우리 인재들이 중국 ‘과학 굴기’에 일조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게 하려면 과학 인재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긴급히 요청된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