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8] 완전무결한 아담의 타락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트의 도주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10 06:30:10

신이 창조한 대로 살았다면 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신이 되었을지 모른다. 아담은 신의 모습 그대로 아담을 복제하고 아담은 또 아담을 복제했을 것이다. 평화롭고 고요하고 무결한 존재로 영원불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둘이 되기 위해 불완전해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다. 이것이 내가 중학교 때 ‘완전무결한 아담’이라는 제목으로 쓴 짧은 소설의 줄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내 창작의 결과물이 흡족스럽지 않았다. 그때 나는 어렸지만 내 글에 자만해서 도취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나의 상상에 더 그럴듯한 답을 제시해 준 것은 유대인의 설화였다. 그들에 따르면 이브는 아담의 두 번째 아내였다. 신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똑같은 조건을 가진 암수 한 쌍, 아담과 릴리트를 지었던 것이다. 릴리트는 생명력으로 충만했고 매혹적이었으며 도발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아담의 바람과 달리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아담과 똑같은 권리를 주장했다.

설화에서는 성행위에서도 평등을 주장했다가 아담이 거절하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존재’와 야반도주했다고 전해진다. 버려진 아담이 릴리트에게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으며 얼마나 원한에 사무쳐 치를 떨었을지, 얼마나 괘씸해 하고 저주했을지, 그 결과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졌을지…, 어머니에게서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담의 상실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아담은 절대로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반려를 원했고 신은 그런 아담을 가엽게 여겨 이브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릴리트는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 의해 사탄과 정을 통하는 음탕한 요부의 상징으로 폄훼되었다.

이 설화를 알게 된 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의혹이 풀렸다. 어머니도 여자였다는 것, 그토록 현숙하고 연약하게만 기억되던 나의 어머니에게도 릴리트와 같은 욕망과 주장이 있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선비 같은 아버지에게서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수컷의 야성적 매력을 어머니라고 갈망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 설화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릴리트와 도주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남자와 도망간 게 아니었다. 어머니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내적 열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의심했다. 어머니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육체적 욕망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은 자아가, 온전한 자신으로 살고 싶은 자존감이 꿈틀거리다 기어이 폭발했던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그것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래서 자신을 포기한 거라면, 그래서 부득이 나를 버린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를 내 능력껏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나의 고독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새로운 아내, 천길자가 데려온 아들 달봉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너그러운 눈길을 볼 때마다 나는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이길 수 없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