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7] 가족과 욕망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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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길 거부한 최초의 인간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9 06:30:10

내 아이들도 언젠가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아비의 의무를 다하면 된다고 믿었다. 내가 아버지를 보지 않고 살았듯이 내 아이들이 나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서운할 일은 아니었다.

때가 되면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이었다.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식을 영지 밖으로 내쫓고, 위협이 되면 물어 죽이는 것이 냉혹한 생명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건강을 잃고 이혼을 하고 외로움이 덮치자 세상이 말하는 가족의 정이라는 것이 나를 죽일 듯 괴롭혔다. 하운과의 미래를 은밀히 상상해 보는 이중적인 욕망을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죽기 전에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들을 되찾고 그들과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나는 힘없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놀이터를 빠져나가면서 빈 그네의 줄 한쪽을 끝까지 잡아당겼다가 활시위를 튕기듯 손을 놓았다. 그네는 멀리 날아오르지 못한 채 중심을 잃은 추처럼 비틀거리며 빙글빙글 제자리를 맴돌았다.

수원까지 코레일 관리 구간은 모두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무와 도로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 운전실의 유리창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이 순서대로 다가오고 바람이 스쳐 가고 눈이 쏟아지고 비가 퍼붓는 장면을 상상하며 나는 창밖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지상의 풍경을 지켜보았다. 스쳐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살았던 것일까. 괜찮다고 마음을 추슬러 보아도 가슴이 저렸다.

사춘기 시절 나는 궁금했다. 신은 왜 인간을 처음부터 커플로 창조하지 않았을까. 모든 짐승은 암수 한 쌍으로 지었는데 아담은 왜 혼자였을까. 아메바에 대해 배웠던 생물 시간에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자기복제를 통해 영원히 살 수 있는 아메바를 신이 창조했다면, 애초에 인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을 것이다. 신에게 아내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었으므로, 신의 모습대로 지은 인간에게 거추장스러운 성의 교환 기능을 부여하지 않았을 거라는 나의 추측은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아담이 졸랐다.

“나도 짝을 만들어 주세요.”

“너에겐 짝이 필요 없다.”

“왜요?”

“너는 너 자체로 완벽하다.”

“싫어요. 잠자리도 염소도 짝이 있는데 나만 없잖아요.”

“어리석은 것. 너는 잠자리도 염소도 아닌 것을 모르느냐. 너는 내 모습을 닮은 인간이다.”

신이 호통쳤다.

“싫어요. 난 아메바가 아니란 말이에요. 난 사랑할 대상이 필요해요.”

아담은 고집을 부렸다.

“완벽하다고 하셨지만 전 외로워요.”

“나도 때론 고독하단다. 고독이야말로 신의 본질이란다.”

“난 외로운 신이 되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