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81] 아내, 믿음직했던 나의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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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잃은 눈먼 사랑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30 06:30:30

달봉이는 내 우산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날 나는 그들 뒤에서 파란 새 우산을 쓰고 철벅철벅 운동장을 혼자 걸었다. 앞서가는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흠뻑 젖어 버린 달봉이의 어깨만큼 세상에 부러운 게 없었다.

“우리 엄 목사, 목사님 호적에서 팠다.”

나는 달봉의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엄 목사? 이마를 찌푸리고 뜻을 한참 생각해야 했다.

“네 아버지 정신 멀쩡할 때 허락하신 일이야. 법으로, 너와 우리 엄 목사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러니 탓하지 마라.”

한번은 전화를 끊고 아내가 말했다.

“어머님은 늘, 우리 강 목사, 우리 강 목사, 하고 말씀하시는 거 있지. 엄청 닭살이야. 당신한테도 우리 강 기관사, 우리 강 기관사,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아내가 입을 삐죽거렸다.

“기관사랑 목사랑 다르지.”

“기관사가 어때서? 죽은 사람 천국으로 실어 나르는 일보다 매일 출퇴근시키는 기관사가 백배는 더 선한 일이다, 뭐.”

아내가 발끈해서 입을 뾰족하게 말아 올리며 퉁퉁거렸다. 그런 아내는 얼마나 믿음직한 나의 우군이었던가. 그런데 언제부터 아내는 먼 사람이었을까.

아내는 달봉이 더 이상 강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말한 적 없었다.

“이쪽으로 옮기면서 나, 아버지를 찾았어. 그분이 내 뿌리잖아. 법적으로나마 친아버지의 아들로 살고 싶었는데 그분의 가족이 결사반대했지. 유산상속은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포기각서에 공증까지 받고서야 호적에 오르는 걸 허락받을 수 있었어. 오해는 마라. 목사 아버님이 남기게 될 유산, 크진 않지만 한 푼도 안 썼어. 너 사고 나고 네 정신 아니었잖아. 수정 씨한테 통장 도장 다 맡겨 놓았으니 네가 알아서 해. 목사님 아들은 너니까.”

달봉이 계속 이야기했다.

“난 여기 월급 목사야. 조만간 그만둘 생각이지만. 나한테 기회를 줘 보려고 해. 친아버지한테 받은 유산이 있거든. 음악 말이야. 그분 가족한테 허락받지 않아도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거니까. 영국으로 가서 공부할 거야. 늦었지만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게 신께서 내게 준 소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두둑, 내가 쓰러뜨리려던 나무가 이토록 컸을까. 그 앞에 나는 너무나 작고 사소해서 상처 입을 자격조차 없었다.

“네가 돌볼 수 없다면 며늘애랑 애들, 내가 거둘 거다. 그 양반 손자니까. 무엇보다 우리 엄 목사가 좋다면.”

“어머니!”

달봉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나는 힘없이 돌아섰다. 아들을 편들어 주는 모정의 등장과 변호는 나를 완전히 패배시켰다.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 달봉이 한마디 독하게 못 박았다.

“자격 없어, 넌. 과거에 붙잡혀서 눈앞의 수정 씬 못 보잖아.”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서서 주먹을 꼭 쥐고 달봉이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덤벼들 기운도 의욕도 더 이상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휘청휘청 쓰러질 듯 교회를 걸어 나왔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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