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혁신 놓친 ‘인텔의 위기’ 강 건너 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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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시장 선도하던 인텔 최악 위기
반도체 판도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추락세로
민·관·정, 투자·세제·예산·입법 지원 과감히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06 00:02:01

‘반도체 제국’으로 불리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 온 미국 인텔이 실적 악화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다. 세계 반도체 분야를 비롯해 첨단기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게 됐다. 우리 기업들은 물론 정부·정치권 역시 인텔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위기설이 부상한 것은 최근 인텔이 프로그래밍 반도체(FPGA)를 만드는 자회사 알테라를 매각할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다. FPGA는 용도에 맞게 회로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로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등의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5년 167억 달러(약 22조 원)에 인수한 FPGA 기업 알테라를 9년 만에 매각한다는 건 인텔이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인텔은 한때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지배했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는 반도체 분야 매출에서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기업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영업 손실이 1분기 11억 달러를 기록하고, 2분기에는 16억 달러로 늘어났다. 주가는 60%가량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1000억 달러 이하로 내려갔다. 인적 구조 조정에도 나섰다. 이미 전체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1만5000명 규모의 감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사업 구조조정과 인적 구조조정까지 단행하는 모습이다.

그간 인텔이 반도체산업에서 차지해 온 위상은 ‘무어의 법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약 2년마다 최소한의 비용 증가로 반도체 집적회로 성능이 2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은 인텔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텔의 공동 창립자인 고든 무어가 경험적 관찰을 통해 정립한 이 법칙은 반도체산업 발전 속도의 예측 기준이 되어 인텔과 경쟁업체들이 계속해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자 동기 부여의 촉매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 반도체산업의 역사를 열었던 인텔이 지금은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각에서는 인텔 50년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최근엔 인텔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8나노 공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인텔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반도체 최강자로서의 위상에 만족한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고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년대 후반부터 40년 이상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독점했던 인텔은 당시 누리고 있던 위상에 매몰돼 다가올 반도체산업의 판도를 예측하고 그 변화를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또 다른 인텔의 실수로는 기술개발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2000년대 후반 애플 아이폰 등장으로 정보기술(IT)의 판도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걸 간파하지 못한 점이 인텔의 경영 실패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개발에 투자하기보다는 비용 축소 등 단기적 경영 성과에만 매달렸다. 그러는 사이 경쟁사들은 치고 나갔다.

인텔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 삼성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메모리 사업도 늘 도전을 받고 있고, AI 반도체 주도권을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진 첨단 패키징(다양한 칩 여러 개를 쌓고 묶어 성능을 높이는 기술) 분야는 관련 기업이 전무한 상황이다. 기업은 적기에 과감한 투자로 기술을 확보하고 정부는 세제·예산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반도체특별법 등의 조속한 처리에 여야가 협조하길 기대한다.

스카이데일리 skyedail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