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뉴욕發 기침에 폐렴 걸린 한국 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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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금융부장·부국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16 00:02:40

한·미·일 주식시장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미국 증권시장이 기침하니 일본 증시가 감기에 걸리고 한국 증시는 폐렴까지 앓았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금요일(2일) 2.3% 내렸다. 뉴욕발 주가 하락 소식은 13시간이란 시차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선 토요일 오후에 알려졌다. 월요일이 되자 일본 증권시장을 대표하는 닛케이지수가 12.4%나 빠졌고 한국 유가증권시장(KOSPI)도 무려 8.7%나 떨어졌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있던 미국에선 나스닥 지수가 14일 현재 목요일(1일) 종가 수준을 회복했다. 엔저에 시달렸던 일본도 닛케이 지수가 사상 최대 하락으로 들썩거렸지만 반등한 덕분에 금요일(2일) 종가보다 오히려 1.48% 올랐다. 그러나 한국 코스피만 금요일(2일) 종가보다 1.18% 떨어진 상태다. 한국 증시가 외부 변인에 얼마나 허약한지 짐작할 수 있다.

“불안한데 갖고 있는 주식을 모두 팔까?” 최근 검은 월요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주식 거래를 일시 중단(서킷 브레이커)시킬 정도로 코스피(-8.7%)와 코스닥(-11.3%)이 폭락해서 시가총액이 무려 235조 원이 증발했으니 놀랄 만했다. 라디오를 켜니 “현금이 없어서 다행이다”는 말도 들렸다. 주가가 빠진 만큼 오를 거란 생각에 주식을 사고 싶지만 아무래도 주가가 더 빠질 것 같다는 뜻이었다.

주식 가격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도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를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이유를 알고자 하지만 관련 기사는 단편적인 사실을 전달할 뿐이다. 수많은 씨줄과 날줄이 얽혀서 옷 한 벌이 만들어지듯 복잡다변한 미국과 일본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은 2020년부터 정부 지출을 대폭 늘렸고 금리도 낮췄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가 걱정되자 정부는 지출을 대폭 늘려서 경기를 부양했고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늘리려고 금리를 낮췄다. 시의적절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유효수요를 만들었고 미국과 일본은 코로나19 시기에도 경제 성장과 주가 부양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긴다. 경기 호황이 과도하면 물가가 치솟는다. 미국에 가족을 보낸 지인은 “햄버거를 먹으려면 10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기러기 아빠가 생활비를 걱정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패스트푸드를 사치품을 여기는 미국인이 78%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을까. 미국 물가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한국에서 전기차 세액 공제 관련법으로 알려진 IRA(the Inflation Reduction Act)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인 까닭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고물가를 걱정한 미국은 2022년부터 긴축통화 정책을 선택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0%대였던 기준금리를 5%대까지 꾸준히 높였다. 시의적절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앞세운 미국은 나스닥 주가를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연초 대비 90.58%나 끌어올렸다. 하지만 고물가와 함께 덩달아 실업률도 높아졌다.

동전의 양면처럼 실업률은 경기침체와 함께 올라간다. 과도한 경기 호황을 의미하는 고물가와 대규모 실업이 예고할지도 모를 경기침체는 미국으로 하여금 금리를 함부로 건드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까닭에 경제 주체들은 유독 7월 실업률에 주목했다. 미국노동부가 금요일(2일) 발표한 실업률은 4.3%로 6월(4.1%)보다 0.2% 올랐다. 실업률이 높아졌다는 소식에 8월에 금리 인하설과 무관하게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실업률 0.2% 증가에 깜짝 놀란 미국 증시는 2%대 하락을 경험했고 나비 효과 때문에 태평양 건너 일본과 한국 증시는 폭락했다.

일본도 미국처럼 고민이 많다. 일본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일본은행이 국채를 사들였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일본은 엔화 가치 하락과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엔저 현상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외국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자 여론도 나빠졌다. 외국인에겐 식사비와 관광요금을 비싸게 받자고 할 정도로 엔저 현상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심각했다.

일본은행은 7월 말 기준금리를 올렸다. 기준금리는 0~0.1%에서 0.25%로 고작 0.24%가량 높아졌다. 확대통화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웬걸, 엔화 가치가 높아지더니 주식가격이 폭락했다.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서 미국처럼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는 앤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될 수 있다는 전망은 검은 월요일을 만들었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과 일본은 감기를 앓으며 통화정책에 대한 위기를 느꼈다. 그러나 한국은 춥지도 않은데 폐렴까지 앓았다. 미국과 일본 경제가 감기가 아닌 폐렴에 걸린다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이상준 금융부장·부국장대우 ju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