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市 ‘평화의 소녀상’ 둘러싸고 논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국제사회

베그너 시장 “反日 부추기는 일방적 주장… 존치 반대”
코리아협의회 “성폭력 비판할 뿐… 자진 철거 안 해”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04 19:24:43

▲독일 베를린 중심가 미테구(區)에 2020년 9월 설치된 이른바 '평화의 소녀상'이 일방적 주장을 담았다는 취지에서 철거가 고려되는 가운데 현지 언론이 일본 정부의 로비를 보도했다. 소녀상엔 "난 이곳을 떠나야 해요", 옆자리 빈 의자엔 "기억이란 슬퍼하는 것, 슬퍼함이란 투쟁하는 것"이란 문구가 보인다. 지난 30년 학계와 현장 전문가들의 연구와 증언에 따르면 10대 초중반의 어린 소녀가 강제 연행·납치된 사례는 없다. 스카이데일리·연합뉴스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일방적 주장을 담고 있어 존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소녀상을 설치한 재독 시민단체 지원예산 삭감 압력을 넣었다고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rbb방송은 3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베그너 시장이 문화교육 프로젝트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자문위원회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 정부와 분쟁 가능성이 있다며 코리아협의회 인권교육 지원예산 삭감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코리아협의회 측이 신청한 8만7000유로(약 1억3000만 원)가 예술·교육계 심사위원단의 1차 심사를 통과한 후 4월 베를린시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부결된 상태다.

2020년 베를린 소녀상 설립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는 이듬해부터 ‘내(소녀상) 옆에 앉아 봐’란 이름으로 베를린 지역 청소년들에게 전시 성범죄를 비롯한 성폭력 전반을 다루는 인권교육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현재 논란 속의 미테구 소녀상에 “난 이곳을 떠나야 해요”, 옆자리 빈 의자엔 “기억이란 슬퍼하는 것, 슬퍼함이란 투쟁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놓여 있다.

코리아협의회에 따르면 해마다 베를린시의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현지 청소년 300여 명을 교육했으며 올해 예산이 삭감돼 5월부터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베를린시 당국에선 “프로젝트 기금은 다수결로 결정되며 위원회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는다. 위원회 결정에 대해 언급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rbb는 또 독일 주재 일본대사관이 베를린 시내 5성급 호텔에서 자문위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며 예산 지원에 반대하도록 로비했다고 보도했다. 일본대사관은 로비 여부 관련 rbb 질의엔 외면한 채 코리아협의회의 인권교육에 대해 “일방적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며 “아시아 지식이 부족한 독일 젊은이들에게 반일감정을 심어준다”고만 답했다.

관련 전문가인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우연 박사는 위안부문제를 활용해 인권교육을 한다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 “소녀상으로 상징된 위안부문제는 전시 성폭력이 아니라 식민지시대 가난·무지·전근대적 가족관계 속에 취업사기가 더해져 매춘업에 몰린 여성들의 비극”이라며 “이를 끌어들여 독일 정부의 예산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본지에 의견을 보내 왔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전반적인 성폭력 문제를 다룰 뿐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교육이 아니다. 프로젝트 신청서에 일본과 관련한 내용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2020년 9월 소녀상 설치 후 일본 측은 반발했으며 관할 미테구청이 철거를 명령했으나 코리아협의회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철거 명령은 보류됐다.

베그너 시장이 5월 일본 도쿄에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만나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기념물은 찬성하지만 더 이상 일방적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소녀상 철거를 시사한 바 있다. 소녀상 행정처분 권한을 가진 미테구청도 특별허가 기간이 2022년 9월로 끝났다며 내달 28일 이후엔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과태료를 계속 내더라도 소녀상을 자진 철거하지 않겠다는 게 코리아협의회 측 입장이다.

앞서 6월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의 사르데냐섬 관광지 스틴티노시에 설치된 소녀상도 물의를 빚었다. 현지 시장이 일본측 문제제기에 한·일 양측 입장을 모두 담는 쪽으로 소녀상 비문 문구를 변경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6월22일 나왔다. 그러나 리타 발레벨라 시장이 해당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한국 위안부 관련 단체 측에 이런 발언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발레벨라 시장은 제막식을 하루 앞둔 6월21일 시청에서 일본 교도(共同)통신에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한국 시민단체의 “일방적 주장이 비문에 적혀 있다”면서 “문구 변경을 검토 중”임을 밝힌 것으로 통신이 보도했다. 하지만 발레벨라 시장은 이를 부인했다는 게 정의기억연대 측 주장이라고 알려졌다.

소녀상 비문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수많은 소녀와 여성을 강제로 데려가 군대의 성노예로 삼았으며, 소녀상은 이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상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스틴티노 소녀상은 독일 베를린에 이어 유럽 내 공공장소에 설치된 두 번째,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공립 도서관 앞에 해외 최초의 소녀상이 세워진 이후 14번째에 해당한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