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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당은 한 때 대만의 반공(反共) 정당이었다. 장제스(蔣介石)가 이끈 국민당은 1927년 4월~1950년 5월의 국공(國共·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내전에서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에 맞서 싸웠다.
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섬으로 쫓겨 간 뒤에도 국민당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장제스는 본토 수복을 목표로 군사력을 기르고 국민을 교육했다. 6·25 전쟁 때는 중공군 개입에 맞서 한국을 도와 파병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비록 대만 참전은 확전을 우려한 한·미에 의해 정중히 거부됐으나 국민당의 반공 의지는 그만큼 강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국민당은 친중(親中)을 넘어 친공(親共) 성향으로 바뀌어 갔다. 학계에선 그 시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적잖은 학자들은 마잉주(馬英九) 총통 집권 시기를 꼽고 있다.
2008년 총통 선거 당시 대만 경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임 총통 천수이볜(陳水扁) 집권 시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승승장구한 반면 대만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설상가상 2004년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대한민국에게 추월당했다.
이에 마잉주는 우선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을 벤치마킹해 633정책(연 경제성장률 6%·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실업률 3% 이하 달성)을 내놨다. 또 대만 경제의 출구를 중국 본토에서 찾았다. 천수이볜 시절부터 상당수 대만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대륙으로 진출하던 터였기에 마잉주의 정책은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마잉주 집권 후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성은 급속도로 심화돼 갔다. 그러나 마잉주는 대삼통(大三通)을 천명하고서 아예 양안(兩岸) 간의 규제를 상당수 완화해 버렸다. 많은 중국 기업·이주자·노동자들이 대만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대만인들의 비명 소리가 높아져 갔지만 마잉주는 재선 시기인 2015년 11월7일 싱가포르에서 시진핑(習近平)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마이웨이를 걸었다.
결국 분노한 대만인들은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을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포퓰리즘을 위해 정체성마저 내던졌던 국민당은 과거의 반공 이념·국태민안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그 사이 친공 정당으로 변질돼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 총통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타이베이 검찰은 린더왕(林德旺) 대만인민공산당 주석 등을 ‘반침투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린더왕은 2016년 총통 선거에 즈음해 ‘국민당’에서 제명된 인사였다. 검찰에 의하면 린더왕은 대만사무판공실 정당국 소속 중국 관리(부국장)와 10년 넘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시를 받고 관련 보고를 해 왔다. 2018년에는 중국 측 지시에 따라 타이난시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며 대만사무판공실로부터 3만 대만달러(약 126만 원)를 수수했다.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때는 1인당 500대만달러를 주면서 시위대를 모아 20차례 넘게 항의 시위를 벌였다.
마잉주는 아예 대만 흡수합병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진핑을 극찬하기도 했다. 마잉주는 2024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독일 도이치벨레 인터뷰에서 92공식(九二共识·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 언급 도중 “양안 관계에 있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당 후보였던 허우유이(侯友宜)는 “나는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반대한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으나 소용없었다. 국민당은 2016·2020년에 이어 2024년 총통 선거에서도 패배하면서 영원한 야당에 머물 처지에 내몰렸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가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한동훈 후보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한 후보는 ‘동료시민’ 등을 언급하면서 당의 전면적 쇄신을 주장 중이다. 지금까지의 보수 정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묻지마 팬덤’도 한 후보의 특징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한 후보에게 의구심을 품고 있다. ‘보수 궤멸’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문재인정권 초기 검찰 시절을 화양연화(花様年華·꽃 같이 아름다운 시절)로 꼽았다는 그가 ‘다른 의도’를 갖고 당 대표 선거에 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 후보가 후보자 토론회에 임하는 태도는 이러한 의혹에 부채질을 더하고 있다. 그는 당내 여론조성팀(댓글팀) 존재 여부 논란에 연루되는가 하면 타 후보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건 관련 공소취하 부탁 의혹을 제기하는 등 좌충우돌하고 있다. 마치 당의 안위·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듯 야권 탄핵 대상이 된 자기 일신(一身)의 안녕만을 위해 폭주하는 것 아니냐는 게 야권 일각의 추측이다.
기자는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고소당한 뒤 검찰로부터 ‘징역 10월’이 구형돼 불구속기소 상태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들락거리다가 재판부에 의해 옥고를 면한 바 있다. 단지 문재인 정권 초기 ‘의혹 기사’를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단 기자뿐만 아니라 많은 보수 인사들이 혹자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혹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그때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한 후보가 화양연화로 꼽았던 그 시절 말이다.
한 후보는 석고대죄(席藁待罪)에 준하는 반성이 없는 한 자신의 과거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게 될 것이란 점을, 국민의힘이 한 후보로 말미암아 제2의 국민당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두고두고 지속될 것이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울타리가 사라지면 양떼는 늑대의 먹이가 되듯 당이 무너지면 한 후보를 기다리는 건 파멸뿐이다. 이제라도 과거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소속 정당에 대한 진심어린 애당심(愛黨心)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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