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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사일생 트럼프… 대세론·동정론 고조
총격 사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가도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 13일(현지시간) 펜실베니아 버틀러 유세장서 피격 직후 경호원들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트럼프가 그를 엄호해 재빨리 피신시키려는 경호원들을 잠시 제지하고 관중을 향해 주먹을 불끈 치켜들어 보이며 건재를 과시했다.
트럼프에 대한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이미지 메이킹이 더욱 힘을 받게 된 분위기다. 이들은 기득권을 공격하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의 상징성을 트럼프에게 투사해 왔다. 국경을 넘나들며 거대한 부와 명예를 누려 온 글로벌리스트 세력에 맞서 ‘자국 우선’ ‘서민·중산층 살리기’를 위해 애쓰다 탄압받는 인물이 트럼프라는 것이다. 이번엔 실제 피흘리는 모습까지 더해져 이들의 ‘트럼프 서사’가 더욱 현실감을 띠게 됐다.
이날 오후 6시13분쯤 연단에서 약 183∼274m 떨어진 건물 옥상에 범인이 걸터앉아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 ABC뉴스는 전했다. 트럼프가 불법이민 문제를 본격 언급하려던 순간이었다. 아홉 발 총성 중 범인의 한 발이 트럼프 오른쪽 귀를 스쳤다. 그가 설명을 위해 스크린 차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총알을 머리에 맞을 뻔 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으며 이 와중에 시민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은 중상을 입었다. 스티븐 청 트럼프캠프 대변인이 트럼프의 무사(fine)함을 전한 후 트럼프 스스로 자기 소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총소리를 듣고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순간 피부를 찢는 총알을 느꼈다”며 이어 시민 사망자·부상자에게 애도와 위로를, 경호국 및 법집행 당국의 신속한 대응에 감사를 표했다.
펜실베이니아 거주 20세 남성인 것만 확인된 범인의 무기는 AR-15 계열 반자동 소총이었다. 군용 M-16을 민수용으로 개량한 것으로 총기 난사범들이 자주 사용해 악명 높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암살미수로 규정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미 하원 정부 감독위원회가 22일 킴벌리 치틀 비밀경호국(SS) 국장을 불러 증언을 청취하기로 했으며, 앞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의회 차원의 전면 조사를 예고했다.
1946년 6월생인 트럼프 역시 고령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이번 사건은 트럼프의 상대적 우위를 인상지울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발을 헛디뎌 보기 민망할 만큼 비틀거리거나 고꾸라지는 모습이 자주 있었던 것에 비하면, 총격 현장에서 트럼프의 비교적 민첩한 몸놀림이나 제스처 모두 가산점이 될 만하다. 부동층에선 동정론도 일고 있다.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모금행사에서 ‘가상화폐 대통령’이 되겠다며 적극 지원을 약속한 트럼프가 피격당한 날 비트코인 가격 또한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개당 3.09% 오른 5만9709달러(8221만 원)에 거래됐으며 이더리움도 1.76% 올라 318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트럼프 재집권 시 현 바이든정부의 적대적인 가상화폐 정책을 뒤집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보도한 바 있다. 베팅사이트 폴리마켓에선 트럼프 승리 예측이 60%에서 70%로 높아졌다.
◇ 총격사건으로 긴장감 속에 승리 기대감 높아져
이번 총격 사건으로 긴장감이 높아진 동시에 승리 기대감도 고조됐다. 15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위스콘신주 밀워키 미국프로농구(NBA) 농구팀(밀워키벅스) 홈구장 파이서브 포럼에서 열릴 공화당 전당대회가 당초 축제 분위기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경호가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대선 첫 TV토론 참패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연례 정상회의에서 고령리스크를 또 다시 확인시킨 가운데 현 상황은 트럼프 대선가도엔 또 하나의 호재로 작용할 게 거의 확실하다. 패색이 짙어졌으나 바이든 부부의 확고한 완주 의지에 흔들림은 없어 보인다.
선거자금 공유가 가능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사실상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흑인‧여성이라는 유리한 상징 자산을 가졌음에도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각인시킨 바 없으며 평소 발언 역시 저평가 돼 왔다. 특히 진지한 질문에 소리내 웃기부터 하는 태도로 인해 별명 ‘낄낄 해리스’가 생겼을 정도다.
트럼프는 이미 3월 후보 확정에 필요한 과반 대의원(전체 2400여 명)을 확보했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한 대선후보 공식 지명이란 추인에 불과하다. 트럼프 지지자들에겐 그의 사법리스크가 정치탄압 내지 마녀사냥으로 받아들여졌다. 기밀서류 반출 혐의의 플로리다 자택 압수 수색, 기소돼 머그샷이 찍힐 때, 입막음돈 관련 유죄평결이 내렸을 때 등등 매번 트럼프캠프에 후원금이 몰렸다. 대부분 소액 기부자들이라는 점 또한 바닥 민심이 드러난 측면이다.
◇ 경합주 위스콘신에서 전당대회 개최 의미
공화당 전당대회가 대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경합주 위스콘신에서 열리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이 12일 공개한 경합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7개 경합주 중 위스콘신을 제외한 6곳에서 우위를 보였다. 위스콘신은 원래 대표적 민주당 지지주(블루 스테이트)였으나 1988년 대선 이래 늘 민주당 후보를 뽑다가 2016년 이변을 낳았다. 힐러리 클린터 전 국무장관이 트럼프에게 패배한 것이다.
이때부터 위스콘신은 경합주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지난 20~30년 저임금을 찾아 제조업이 대거 중국으로 옮겨가며 몰락을 거듭한 오대호(湖) 주변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 벨트)의 위스콘신주 민심을 2016년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제조업 되찾기’ 등을 내세워 집중 공략해 승리했다. 2020년 대선에선 바이든에게 졌으나 개표부정 관련해 말이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는 △15일,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경제) △16일,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이민·범죄) △17일, 미국을 다시 강하게(외교·안보) △18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국정 전반) 순으로 진행된다. 당 내외 유명 인사들이 연설자로 나와 트럼프 지지를 호소하면서 대선승리를 다짐하게 된다.
연설자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때 ‘트럼프 대항마’로 꼽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부통령 후보군인 엘리스 스테파니크 하원의원(뉴욕), 강성 친트럼프 인사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 등과 함께 래퍼 앰버 로즈 등이 무대에 설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아들(도널드 주니어와 에릭), 며느리인 라라 전국위원회 공동의장 등 트럼프 일가도 총출동한다. 선거운동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부인 멜라니아의 연설 여부가 미지수인 가운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는 러닝메이트를 결정했다면서도 공개하진 않았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53), J.D. 밴스 상원의원(39),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67) 등이 집중 거론돼 온 가운데 대회 개막 직전 트럼프에 낙점된 후보가 발표되고 17일 부통령 후보로서 연설한다. 마지막날 트럼프의 대선후보직 수락 연설과 2기 국정의 비전 및 정책 제시와 함께 행사는 절정과 피날레를 맞게 된다.
이번 전당대회에 공화당 대의원·당직자, 지지자·언론·경찰 등 5만 명 가량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대회 기간 반(反)트럼프 집회도 예정돼 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50여대 버스를 동원해 밀워키에 모여 트럼프 비판 집회를 벌일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밀워키 당국이 행사기간 치안 유지 등을 위해 4500명 정도 타지역 경찰을 지원받았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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