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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새끼 뻐꾸기는 어떻게 남의 먹이를 가로채나
행위와 문화를 휘두르는 생존전략 ‘확장된 표현형’
유전자 표현형 효과가 다른 생물체에게 확장된 경우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1 06:31:0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자연에는 다른 개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생존 전략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현상을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유전자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설명한 이론으로 유전자가 끼치는 영향이 개체의 몸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체가 속한 환경에까지 확장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의인화하여 유전자가 긴 팔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확장된 표현형의 예는 다양하다. 특정 흡충류에 기생당하는 달팽이는 특별히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다. 그 껍질은 달팽이의 안전에는 도움이 되지만 번식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는 기생하는 흡충의 유전자가 달팽이의 유전자에 영향을 끼쳐서 번식을 억제한 것이다. 즉 유전자의 표현형 효과가 다른 생물체에게도 확장된 경우다.
 
작은 기생 원생동물인 노제마(Nosema)플루오르 딱정벌레(Fluor beetle)’의 애벌레에 기생한다. 기생자는 애벌레 호르몬을 합성하여 이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것을 막고 애벌레를 거인충으로 만든다. 노제마가 안정적으로 기생하기 위해 숙주인 딱정벌레의 성장을 조절하는 것이다. 플루오르 딱정벌레의 거인증은 노제마의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 효과의 하나이다.
 
게에는 사큘리나(Sacculina)’라는, 따개비 조개와 비슷하고 식물처럼 생긴 동물이 기생한다. 이 기생동물은 게의 생존에 필요한 기관에는 해를 끼치지 않지만 정소와 난소를 공격하여 결국 게를 거세한다. 게의 번식은 사큘리나의 기생에는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기생자의 유전자와 숙주의 유전자가 공통의 출구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나무에 구멍을 뚫는 암브로시아갑충에 박테리아가 기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 박테리아는 숙주의 몸에 살면서 자신이 새로운 숙주에게 운반되는 수단으로 숙주의 알을 이용한다. 양쪽의 유전자 집합은 모두 갑충의 생존 및 알의 증식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갑충의 유전자와 박테리아의 유전자가 협력하여 다음 세대인 알을 낳고 함께 유전된다. 이 경우에 기생자는 숙주의 번식을 방해하기는커녕 도와준다.
 
숙주의 몸 밖에 사는 기생자도 있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으로 유명하다. 철새인 뻐꾸기는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월동하고 봄이 되면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 지역으로 날아와 번식한다. 뻐꾸기는 탁란(parasitic laying·다른 종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게 하는 것)을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번식 성공률을 높이며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하므로 뻐꾸기 암컷은 더 많은 알을 낳고 더 넓은 지역에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다. 뻐꾸기 새끼는 숙주의 몸 밖에 사는 기생자이다. 뻐꾸기 새끼의 빨간 입은 너무도 유혹적이어서 심지어 다른 종의 어미새가 다른 새 둥지에 앉아 있는 뻐꾸기 새끼의 입에 먹이를 넣어 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뻐꾸기의 유전자가 크게 벌린 뻐꾸기의 입의 색깔이나 형상(전통적 표현형)에 주는 효과처럼 숙주의 행동(확장된 표현형)에도 효과를 갖는 것이다.
 
생태계의 엔지니어로 불리는 비버의 댐 또한 확장된 표현형의 한 형태이다. 비버가 만드는 댐은 강의 폭을 가로지른다. 비버는 나뭇가지들을 엇갈려 쌓고, 진흙과 돌로 빈틈을 채워 물이 새지 않게 한다. 솜씨 좋은 비버는 댐이 손상되거나 물이 새면 즉시 수리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못에다 겨우내 먹을 먹이를 저장하고 수심이 깊은 곳에는 자신의 집인 로지(lodge)를 짓는다. 이 안정된 습지와 연못은 비버가 번식하고 새끼를 안전하게 키우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이처럼 확장된 표현형은 유전자가 개체 외부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하며, 유전자 활동의 결과가 개체의 행동이나 생존 전략을 통해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 또한 기생자처럼 지내거나 타인을 정신 지배하여 아바타처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요즈음 심리학에서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보다 더 위험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경고가 많다.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에 비해 나르시시스트는 관계 초반의 애정과 관심으로 인해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중요한 단서는 상대를 조종하려 드는 태도와 행동이다. 그들의 화려한 호의와 환대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서서히 나르시시스트의 정신 지배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그의 확장된 표현형이 되게 만든다. 그들은 상대를 영원한 숙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하고, 상대의 정신적 성장을 중지시키거나 번식의 기회를 제거한다.
 
확장된 표현형의 사례는 인류 역사와 문화 속에도 풍부하다. ‘유전자의 영향이 모든 행동과 문화에 연결되어 있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살벌한 생존 현장에서 나는 기생자인가 아니면 숙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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