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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10] 환영받지 못한 아이
사랑이 떠난 자리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14 06:30:10
 
 
하운은 가슴을 움켜쥔 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파란불이 꺼지고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 그녀는 건널목 끝에 서 있었다. 심호흡을 한 뒤 하운은 병원 출입문을 힘껏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초음파로 내진을 하던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사실은 무섭도록 조용했다. 진찰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던 하운은 잘못됐다는 걸 확신했다. 아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태아의 크기로 봐서 심장이 멈춘 건 최근인 것 같다고, 진료실로 돌아와 마주 앉은 의사가 말했다.
 
지금 결정하기 힘드시면 일주일 뒤로 수술 날짜는 잡아 둘게요. 너무 늦으면 본인도 위험해요.”
 
하염없이 맨발만 내려다보고 있던 하운에게 의사가 말했다.
 
임신을 확인하고 단 한 순간도 아이를 반기지 못했다. 테스트기의 빨간 두 줄을 본 순간에도, 병원에서 임신을 통보받은 순간에도 하운은 기쁘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일까. 그토록 애쓸 때 오지 않고 왜 그날 밤, 동우의 소름 끼치는 비웃음의 순간 내게 온 것일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다. 동우에겐 존재조차 알리지 못한 생명이었다. 그래서일까. 동우에게 내동댕이쳐지던 순간, 아이가 스스로 생명을 단념했다는 걸 하운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병원 진료를 거부한 이유였다. 하운은 동우의 폭행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응급의들 앞에서 아이의 사망선고를 듣고 싶지 않았다.
 
병원을 나왔을 때 빗줄기는 제법 굵었다. 택시를 탔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는 흠뻑 젖은 다음이었다. 환기되지 못한 실내에 피비린내가 안개처럼 떠다녔다. 거실 카펫에 흘렀던 동우의 핏자국은 그대로 말라붙었다. 하운은 현관 앞에 서서 빙 둘러보았다.
 
이 집에서 나는 무엇이었을까. 머리가 아팠다. 피 묻은 원피스를 벗어 던졌다. 뜨거운 물을 세게 틀어 놓고 오래오래 샤워했다. 근육이 풀리느라 시간이 갈수록 몸은 더 쑤셨지만 곧 나른해졌다. 거울 앞에 서서 알몸을 비춰 보았다. 붉고 푸르고 검은 멍들이 목과 등, 어깨와 가슴과 허벅지에 넓게 퍼져 있었다. 혈관이 터져 눈의 흰자위가 빨갛게 충혈되었다. 하운은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방금 뜨거운 물로 목욕을 했는데도 배 한가운데에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옷장을 열어 동우의 옷가지를 모두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옷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합의 조건은 없었으므로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있는 대로 꺼내 모조리 쓸어 담았다. 세탁기 통에 있던 그의 양말과 속옷까지 버렸다. 입고 있던 피 묻은 원피스도 쑤셔 넣었다. 카펫은 둘둘 말아 아파트 단지 쓰레기 수거장에 내놓았다. 졸고 있다가 뛰어나와서 그냥 버리면 안 된다고, 재활용 버리는 날이 아니라고 잔소리하는 경비에게 지폐 두 장을 쥐여 주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며칠 전 하운의 어머니가 끓여 놓고 간 미역국 한 냄비가 고스란히 쉬어 가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기어이 미역국을 끓여 주겠다며 찾아온 어머니였다. 한 생명을 낳아 키웠음을 스스로 대견해하는 의식이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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