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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路 동서고금] <11>자연·인간
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1 06:30:30
 
고전 중국어(한문)에서 자연이란 서술문 스스로() 그러하다()’에 불과했다. 훗날 생긴 그대로’ ‘자연스러운’ ‘자연히등 수식어(형용사·부사)로도 쓰였으나 명사가 된 것은 네이처(nature)의 번역어로 굳어진 19세기 말 이후의 일이다.
 
90년대 한 가수가 노래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그렇다, 자연은 인류가 그것의 일부일 때 인류에게 보이지 않았다. 탐구·개발의 대상이 되고 천부인권의 기반인 서구 자연법(natural law) 개념의 통용 후 자연은 비로소 명사가 됐다.
 
한편 중국어에선 예나 지금이나 인간(人間)은 세상을 의미한다. 고전 중국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산스크리트어의 흔적이며 불교용어로 보급된 이래 1천수백 년간 동북아시아에서 그렇게 쓰였다. 근대 일본에서 시작된 인간=사람용법은 한국·일본에서만 쓰인다.
 
20세기 들어 다수의 일본산 한자어들이 한문 어휘의 전통적 함의·어감을 변화시켰으나 중국어 속 人間만은 옛 쓰임 그대로 ‘세상일 뿐이다. 사람() 사이()가 사람이라는 뜻이 되려면 즉자(即自·존재로서의 주체)와 대자(對自·바라봐지는 주체)를 구분한 서구 근대 철학적 발상이 필요했다
 
1930년대 일본에서 닝겐(人間)히토()의 문어적 표현이 된 배경으로 당시 유행한 독일철학을 꼽을 수 있다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한 20세기 철학자 M. 하이데거에 따르면 사람은 매순간 새롭게 구성된다. 시간의 개입 없이 존재할 수도 이해될 수도 없는 존재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나, 무수한 나와 나 사이가 바로 ‘사람으로서의 나인 것이다.
 
自자는 갑골문에서 원래 (얼굴 위) 코를 가리키다가 훗날 자기 자신을 의미하게 된 반면, 人자의 갑골문은 두 손을 맞잡아 앞으로 들어 올린 채 허리를 공손히 구부린 자세(·)를 본떴다고 해석된다. ‘예의를 아는 생명체가 동북아 문명이 파악한 인간관의 원형인 셈이다
 
이후 약 2000년 지나 삼국지연의의 시대 배경인 3세기쯤이 되면 사람 人자는 서로 기댄 두 개의 획으로 굳어진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본령을 환기시켜 준 재해석이다. 한자는 이렇게 생각이 더해지거나 왜곡되기도 하면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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