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자연스레 살다 보면 열매는 절로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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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31 06:31:10

초록의 계절이다. 꽃이 지고 잎들이 청청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초여름은 인간에게도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제공한다. 밤에 나무들이 줄지은 길을 지나면 잎이 뿜어 내는 싱그러움을 마주한다. 그들 또한 지금이 생의 아름다운 시절임을 알 터이다. 학교에 있으면 사계절 내내 초록의 시절이다. 풋풋한 학생들과 항상 만나니까 세월이 어떻게 가고 나이를 어떻게 먹는지 알지 못한다.

나무와 식물처럼 본성에 충실한 존재는 없다. 어릴 때는 비슷비슷한 잎을 피우지만 좀 지나면 자신만의 꽃을 피운다. 특화된 중매쟁이의 도움으로 수분(受粉)을 하고 나면 여름과 가을을 거쳐 열매를 만든다. 나 같은 도시 무식쟁이는 열매를 보고서야 무슨 나무인지 안다.

어디서 태어나든 어디에 살든 기후가 어떻든지 간에 나무는 오롯이 자기 본성을 실현한다. 옆의 나무가 더 키가 크다고 아님 더 멋있다고 해서 곁눈질하지 않는다. 임무를 수행하다가 가지가 꺾이거나 밑동을 다쳐도 끄덕하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배나무는 배를 품어서 키울 뿐이다. 식물은 하늘이 부여한 자신의 본성을 품어 살려 낸다. 자신의 씨앗을 다시금 세상에 내어놓는 것이 식물의 일이다. 그들은 성실하다.

‘중용’의 첫 부분에 생명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 성을 따라 사는 것이 도(道)이고 도를 행하는 것이 가르침(敎)이다.” 성(性)은 영어로 ‘nature’로 번역되었다. ‘자연’이란 뜻이다. 하늘 또한 자연이니 중용의 첫 구절은 동어 반복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성(性)이 ‘human nature’란 뜻도 가지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동어 반복은 아니다.

‘하늘이 명한 것’은 ‘자연의 원리’이고 그것이 인간에게 오면 본성, 즉 자연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은 자연의 원리를 지닌 자연 그 자체이다. 현대 과학으로 해석하면 유전자의 구조다. 유전자 속의 정보를 보면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적응했는지가 나타난다. 식물이나 동물처럼 인간 또한 자연 속 생명이고, 그들처럼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갈 길(道) 또한 매우 단순하다. 본성을 알아 본성을 좇아 사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삶이다.

모든 생명의 행동 양식은 두 가지가 얽혀 만들어진다. 하나는 유전자에 각인된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한 학습이다. 일테면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은 먹으면 안 되며 어디가 안전한지, 누가 도와줄 사람이고 누구는 위험한지 등등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한 학습이 바로 가르침(敎)이다.

중용의 내용을 보아도 인간이 다른 생명과 동떨어져서 아주 특이하게 사는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과나무처럼 본성에 따른 임무(과제)가 있고 그 임무를 위해 매 분 매 초를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 알게 된다. 임무와 노력과 경험과 학습, 그에 뒤따르는 성취가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길이 어딘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시시하게 보이고 굳이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때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몸을 죽 뻗어 하늘로 올려야 한다. 하늘과 자연의 기운을 흠뻑 받으면 나의 본성이 느껴지고 보이게 된다. 또는 숲에 가거나 정원의 나무 아래 앉으면 된다.

임무를 완수하는 성실한 나무 주변에는 각종 생명이 몰려온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즐겁게 지저귀는 새들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필요로 나무를 찾는다. 집중해 보면 애벌레나 각종 곤충이 보인다. 가지 사이 줄을 쳐 놓고 방문객을 기다리는 작은 거미도 있다. 다들 본성을 실현하느라 아주 바쁘다. ‘내 인생 왜 이렇게 사나?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묻고 고민할 틈이 없다.

‘중용’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꾸준한 것은 자연의 원리이고 꾸준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익숙한 말이고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지능이 높은 인간에겐 꾸준함이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낙심할 때가 많다. 초록이 무르익고 화창한 날 자살률이 올라간다고 한다. 복지가 잘된 나라의 자살률이 오히려 높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게 높다. 더욱 슬픈 것은 초록 같은 젊은이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의 증가이다. 우리의 유전자, 우리의 본성은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자연이다. 자연스럽게 그냥, 살자! 어느 새 열매를 가득 지닌 나무가 되어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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