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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피전 밀크와 부부의 꿈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7 06:31:05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지붕 처마 끝으로 비둘기 한쌍이 날아왔다.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는 애도비둘기(Mourning Dove)였다. 수컷이 마른 나뭇가지를 쉴새없이 물어 왔고 암컷은 예쁘게 둥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2개의 알을 낳자 비둘기 부부는 하루 절반씩 교대로 품었다. 야생 비둘기의 수명은 2년 정도이니 사람으로 치면 1년 6개월을 꼼짝 않고 품은 것이다.
 
2주가 지나자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 그리고 모유 수유가 시작됐다. 비둘기는 먹이를 먹고 반쯤 소화시킨 액체를 다시 토해 입 안쪽의 작은 주머니에 보관했다가 새끼에게 먹인다. ‘피전 밀크(pigeon milk·소낭유)’라고 부르는 젖으로 신기하게도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서 나온다. 부부 공동 양육인 것이다.
 
평화롭던 어느날 새소리가 시끄러워 나가 보니 비둘기 새끼 한 마리가 마당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까마귀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비둘기 부부는 구슬프게 울었지만 남은 한 마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키웠다. 2주가 지나자 새끼는 둥지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미 비둘기는 미련없이 새끼를 혼자 두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리고 새끼도 잠시 마당을 걷더니 날개짓을 하며 집을 떠났다. 이별의 아쉬움도 작별의 껴안음도 없었다.
 
 
# 남편은 툭하면 뺨을 때리고 물건을 던졌다. 하지만 견딜 만했다. 아직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이혼당한 전력이 있었고 날이 갈수록  심한 폭력을 행사했다. 악에 받친 아내는 극렬하게 맞서며 저항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아내를 폭행죄로 고소하고 접근금지명령을 받아 낸 뒤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 버렸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당한 아내가 폭행범으로 몰린 건 남편이 찍어 놓은 영상물 때문이었다. 아내가 거세게 대들 때마다 찍은 영상이었다. 남편은 앞서 이혼소송 때 자신이 당했던 경험을 교묘하게 악용해 아내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 벌써 6년째다. 밥솥 2·냉장고 2. 부부는 각각 재혼하면서 백년해로하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더욱 살갑게 대했다. 그런데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는 겉돌았다. 새 아내도 그런 아이를 잘 챙기지 않았다. 거기다 아내는 제사와 성묘 등 집안 행사에 나 몰라라였다. 결국 부부는 각방을 쓰기로 하고 밥솥과 냉장고를 따로 놓고 각방 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아내는 병문안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쓰던 방을 치우고 다른 사람에게 월세를 줬다. 퇴원한 남편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밥솥과 냉장고를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 남편은 결혼 7년 동안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이혼했지만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은 가게와 집에 찾아오는 등 스토킹했다. 결국 전 남편은 전처 집에 침입해 전처를 흉기로 10차례 이상 찔러 영구적인 장애를 입히고 말았다대구 지방법원은 전 남편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 미국 어느 도시의 한 빨래방. 중년 부부가 깨끗하게 세탁된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젊은 여성이 갓난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안고 들어왔다. 여성은 아기를 의자에 눕히고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 옷도 모두 벗겨 자신의 옷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발가벗은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안고 앉았다. 옷이 한 벌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졸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부는 자신들의 빨랫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 부부가 다시 들어왔는데 세탁이 끝났는데도 여성은 아기와 졸고 있었다. 부부는 여성과 아기 옷이 들어있는 세탁기를 열고 뭔가를 넣고 조용히 사라졌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여성이 세탁기를 열고는 어리둥절해 하며 기뻐한다. 그곳엔 여성과 아기의 새 옷 한 벌씩과 인형이 세탁물과 함께 들어 있었다.
 
# 코로나19가 덮친 2021년 영국. 30년을 해로한 중년 부부 레이너와 모스는 불과 일주일 만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부부가 수십 년에 걸쳐 장만한 집과 부동산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당하고 남편마저 치료약 없는 희귀병에 걸리고 말았다. 인생의 종착지는 먼데 벼랑 끝에 선 부부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배낭 하나씩만 메고 내셔널 트레일 코스인 사우스웨스트코스트 패스로 향했다. 그리고 평범한 주부였던 레이너가 50세가 넘어 쓴 책 소금길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년 동안 1000km가 넘는 길을 남편과 묵묵히 걸으며 자연이 준 진정한 위로와 치유에 관해  써 내려간 것이다. 그 길은 용기와 희망이 샘솟는 길이었다.
 
521 ‘부부의날’. 필자는 아침부터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 정의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오후부터 저녁엔 안산에서 세월호납골당 건립에 반대하는 시민행동에 참여하느라 40년을 살아 준 아내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아니 부부의날인 줄도 몰랐다.
 
아내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써 본다. 사랑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관심과 포용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러한 존중과 배려심이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 부부의 피전 밀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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