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자수첩
[데일리 Talk] 정부의 국어 수준 들통난 ‘해외직구 금지’ 사태
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0 00:02:30
▲ 양준규 경제산업부 기자
최근 정부의 해외직구 규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다. 정부가 KC 마크가 없는 제품의 해외직구를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국민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정부는 18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만을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반입을 차단할 품목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만큼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이 담긴 조선일보 단독 기사를 보면 정부는 KC 인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해외직구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이번 조치는 품목 전체에 대한 사전 원천 차단이 아니라 개별 제품에 대한 사후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설명만 보면 위해 제품을 차단하려고 했는데 언론과 국민이 괜히 호들갑을 떤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16일 해외직구 규제를 처음으로 발표한 정부의 보도자료를 한번 살펴보자.
 
우선 13세 이하의 어린이가 사용하는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유모차·완구 등)은 철저한 안전관리를 위해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 미인증 제품 사용 시 화재·감전 등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큰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전기온수매트 등)은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
 
보도자료 원문을 쉼표 한두 개 지우고 띄어쓰기 한 번 한 것 빼고 그대로 가져왔다. 분명히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고 쓰여 있다. 혹시 금지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을 수 있으니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검색해 본 결과 ‘법이나 규칙이나 명령 따위로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함’이라고 돼 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과연 정부의 설명대로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해당 보도자료는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특허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여성가족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관세청 등이 참여한 정부합동 자료다. 해당 보도자료에 기재된 담당자와 책임자 명단만 봐도 A4 용지 한 페이지 분량이다.
 
이 정도 인원이 참여한 보도자료에 쓰여 있는 문구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생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면 그것도 문제고, 원래 금지하려고 했다가 반대 여론이 커지니까 말을 바꾸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는 상황이다.
 
굳이 이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해외직구 금액이 6조 원을 넘어서는 해외직구 시대에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일단 질러 놓고 부랴부랴 설명하고 공론화를 한다고 나서는 것도 좋은 일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여기서 또 아쉬운 것은 해외직구로 유해성 제품이 국내 반입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정부가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가 계속될 것이며 국정 동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펼 때는 해당 정책의 여파와 국민의 의견을 잘 고려해 신중하게 내놓아야 한다. 정책을 설명할 때도 정책의 목적과 세부 사항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이번에 정부가 일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한 번 더 썼다. 제발 제대로 좀 해라.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2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