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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풍경 낯선 여행] 바람 안고 물결 이고 나는 떠나네… 신안 섬 여행
흑산도의 재발견… 생태관광지로 우뚝
홍도도 울고 갈 비경 ‘영산도 석주대문’
산꼭대기 습지 품은 섬 ‘장도’ 트래킹
신안=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15 08:00:29
 
▲ 코끼리바위로 불리는 영산도 석주대문은 흑산권 해상유람투어 중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임유이 기자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2시간의 여정 끝에 흑산도항에 닿았다. 부지런히 짐과 사람을 부려 놓은 배는 홍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과거에 흑산도는 여행의 최종 목적지라기보다 홍도 가는 길에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 항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흑산도를 위시해 전라남도 신안군의 섬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잠깐 머물다 가는 중간 기착지가 아닌 당당한 여행 목적지로 인정받고 있다.
 
흑산도: 새들의 고향
 
▲ 신안군이 최근 섬에 컬러 마케팅을 도입함에 따라 흑산도의 집들은 파랑색으로 통일됐다. 임유이 기자
 
흑산도는 홍어라는 막강한 아이템 때문에 장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흑산도와 인근 섬은 홍도가 와서 울고 갈 만큼 놀라운 비경을 감추고 있다. 홍도야 우지마라. 홍도가 관광지라면 흑산도는 여행지. 숨은 경관을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수고로움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행에서 얻는 보람도 클 수밖에 없다.
 
흑산도 예리항에서 멀지 않은 진리에 신안철새박물관과 새조각공원이 있다. 흑산도에 이토록 새 관련 명소가 많은 것은 이곳이 대양주를 여행하는 철새들의 주요 길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봄·가을이면 부쩍 많은 새들이 관찰된다. ·가을은 새들이 번식지를 떠나 월동지를 찾아가는 기간이자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다양한 철새가 흑산도를 거쳐 가는 만큼 한반도에서 관찰되지 않은 미기록종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2003년부터 발견되는 새들만 파랑딱새·집참새·꼬까울새 등 25종에 이른다. 지역민들은 사람도 나그네, 새도 나그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지만 그만큼 흑산도는 모두에게 귀중한 쉼터라는 뜻이다.
 
▲ 신안의 식생을 그대로 재현한 신안철새박물관 전시관. 임유이 기자
 
▲ 새조각공원에는 제3세계 예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아프리카 쇼나 조각 213점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임유이 기자
 
2015년 개관한 신안철새박물관은 흑산도를 거쳐 가는 철새는 물론 희귀 조류의 표본을 여러 본 갖추고 있어 국내 조류계의 보물로 여겨지는 곳이다. 특히 꿩을 사냥 중인 참매나 밀사초에 둥지를 튼 바다쇠오리 가족 등 입체적인 표본을 통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밖에 독특한 외모로 유명한 긴꼬리딱새 그리고 국내 유일 흰배줄무늬수리 표본과 만날 수 있으며 흑산도에서 직접 새끼를 낳고 번식하는 흰꼬리수리의 당당한 활공을 포착한 실물 크기의 벽화도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새조각공원은 해변 끝자락 내영산도와 연결되는 해안가에 자리해 있다. 죄인들을 가두던 옥섬이 잡힐 듯 가까워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이다.
 
▲ 흑산도 서쪽에서 만날 수 있는 구문암. 임유이 기자
 
3세계 예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아프리카 쇼나 조각 213점이 조화롭게 배치된 이곳은 새조각공원으로선 국내 최초로 꼽힌다. 쇼나는 짐바브웨 다수 부족의 이름으로 전통적인 도구만을 사용해 작품을 조각하는 게 특징이다.
 
거친 돌의 단면을 그대로 살린 비상과 오팔을 재료로 단순미를 강조한 올빼미그리고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형상의 독수리가 눈길을 끈다. 현실 세계에서는 먹고 먹히는 천적 관계지만 은빛가자니아 꽃밭을 배경으로 사이좋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천국을 방불케 한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더 이상 바다로 나가지 않는 폐선과 쉴만한 벤치가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새조각공원 내 새공예박물관에서는 새에 관한 모든 것과 만날 수 있다. 특히 2012년부터 신안군 직원들이 선진지 견학과 개인적인 여행 등을 통해 세계 20개국에서 들여 온 조류 공예품 450점과 미국에서 제작한 목각 공예품 등 260여 점이 빨간 동백꽃 장식과 어우러져 큰 볼거리를 형성한다.
 
영산도: 바위의 고향
 
▲ 영산도 마을 주민이 해안에서 마른 머윗대를 거두고 있다. 임유이 기자
 
흑산군도는 대흑산도를 에워싼 60여 개의 섬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흑산도 동남쪽으로 신안 최고의 명승 영산도가 자리해 있다. 신이 조각한 영산도 멋드러진 기암괴석은 홍도의 아성을 위협할 만하다.
 
흑산도를 출발한 영산호는 날 듯 달려 25분 만에 초승달 모양의 선착장에 승객을 부려 놓았다. 2012년 국립공원이 선정한 명품마을이라고 해서 크게 기대했는데 한 마디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명품에서 풍기는 고급스러움이나 마을특유의 소란스러움이 없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면 바다로 흘러내릴 듯 길게 뻗은 된볕산 산세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이국의 외딴 휴양지를 연상시킨다.
 
▲ 최성광(사진) 이장은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사진) 27회 졸업생이다. 임유이 기자
 
100m 남짓한 아늑한 해변은 파도마저 상실했다. 순하게 밀려 들어온 물살은 밀려 나갈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모래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 위를 도요새 한 마리가 종종거리며 뛰어다닌다.
 
7분 남짓 소요되는 짧은 등산로를 따라 뒷산 언덕으로 오르면 해변이며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산 마을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홍어잡이가 최초로 시작된 섬이라는 명성도, 400여 가구가 박작거리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다 전설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마을의 전부다 보니 풍경이 곧 지도로 기능한다.
 
마을 입구 보건진료소는 영산도 14가구 30여 주민의 큰 위안이다. 대처로 나가기가 쉽지 않은 만큼 마을 주민은 아플 때 이곳을 찾는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지점에 전교 1등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3년 전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폐교를 선언하기 전까지 이곳에는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가 있었다. 전교생 수가 1명이었으므로 전교 1등이 다니는 학교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제가 다닐 때까지만 해도 국민학생 수가 100명에 달했어요. 아침이면 학교 가는 아이들로 골목이 바글바글했지요.”
 
최성광(58) 이장의 설명이다. 그 시절 주민 수는 430여 명에 달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0년 새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최근에는 방문객이 주민 수를 추월하고 있다. 대부분 영산도 절경을 구경하기 위한 선상투어 여행객이다. 그밖에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한 비치코밍과 전복따기 등 어업 체험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어떤 체험이든 필수적으로 해안 절경을 둘러보는 선상투어가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영산도 선상투어는 흑산도 관광안내소에 문의할 수 있다.
 
▲ 노인의 옆 모습을 닮은 영산도 할아버지바위. 임유이 기자
 
▲ 선상투어 유람선이 기암괴석 앞을 근거리에서 지나고 있다. 임유이 기자
 
시동이 걸리기가 무섭게 유람선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움 속을 깊이 파고 든다. 깃에 고개를 파묻은 새 형상의 새바위는 태풍이 오면 날아갔다가 바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는 전설의 바위다. 떠도는 말을 확인하고 싶어도 태풍 부는 날 해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영원히 미확인 전설로 남아 있다.
 
코끼리바위로 불리는 석주대문은 흑산권 해상유람투어 중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여러 곳에 코끼리바위가 있지만 유람선이 통과할 만큼 규모가 넉넉한 곳은 영산도가 유일하다. 하루 1회만 운영하는 투어다 보니 배가 아치를 통과하는 장면을 누구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그밖에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면서 코 고는 소리를 내는 비성석굴과 바위 속에서 하늘을 만나는 용생암굴 그리고 일제강점기 젊은이들이 강제징용을 피해 몸을 숨겼던 파수문 바위 등 다양한 기암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 흑단처럼 까만 염소 한 마리가 섬지기로 근무하는 등대섬은 많은 관광객이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삼는 곳이다.
 
장도: 습지 품은 섬
 
▲ 흑산도 상라리 낙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장도 전경. 섬이 길다. 임유이 기자
 
장도는 끊어질 듯 붙어 있는 대장도와 소장도를 총칭한 이름이다. 모양이 길어 장도라고 부른다. 영산도가 선상투어나 체험관광 같은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섬이라면 장도는 어떤 간섭도 없이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섬이다.
 
흑산도 상라리 낙조 전망대에서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예리항까지 갔다가 돌아 나와야 하므로 이곳도 25분 뱃길이다.
 
장도 선착장이 가까워지면 가파른 산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승천하는 덱이 보인다. 해안에는 고깃배가 출어를 기다리고 있다. 장도는 공식적으로 80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배가 사람보다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 장도에는 사람보다 배가 많다는 소문이 있다. 임유이 기자
 
너무 짧아 아쉬운 마을 골목을 지나 장도습지로 향하는 덱 위에 선다. 해발 230m 섬 정상으로 가는 길, 그늘이 되어줄 만한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고 좌우로 바람을 막는다는 뜻의 방풍나물만 무성하다.
 
해발 230m의 장도는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천혜의 자연 낙원이다. 섬 꼭대기에 습지가 형성돼 있다 보니 특별히 귀한 대접을 받는다. 1980년대까지 섬 주민은 산꼭대기 습지에 논을 일구고 소를 키웠다.
 
논이 물러 간 자리에는 대나무 등의 식생이 뿌리를 내렸다. 최근 버드나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산정은 물론 섬 전체에 수질 정화에 탁월한 이탄층이 사시사철 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 동·식물은 물론 주민도 식수 등의 혜택을 보고 있다.
 
▲ 장도 정상에 자리한 습지. 임유이 기자
 
▲ 덱 왼쪽으로 습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나무 숲이 보인다. 임유이 기자
 
장도 선착장과 정상부 습지를 오가려면 최소 1시간을 잡아야 한다. 길은 가파르지만 덱이 잘 마련되어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 섬을 둘러보는 데 큰 무리는 없다.
 
흑산도에서 장도까지는 월··금요일 하루 2회 배가 다닌다. 배삯은 5000원으로 영
산도와 동일하다.
 
흑산군도 3총사 대흑산도·영산도·장도는 한 코스로 둘러볼 수 있다. 1박은 짧고 23일 일정이면 빠듯하게나마 세 곳을 둘러볼 만하다. 흑산도에는 흑산성당과 뜨락을 공유하는 흑산문화관광호텔 등의 숙박업소가 있으며 영산도에는 국립공원공단 공식 민박 업소가 8채 자리하고 있다.
 
▲ 아침 7시 흑산도 수협위판장에서는 홍어 경매가 한창이다. 임유이 기자
 
▲ 현지에서 맛보는 삼합의 맛이 기가 막히다. 임유이 기자
 
흑산권역을 방문했다면 홍어 맛을 꼭 볼 일이다
. 9월 금어기만 제외한다면 언제든 현지 홍어를 맛볼 수 있다. 최근 수온이 올라가면서 홍어가 대량으로 포획되고 있어 예년보다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아침 7시 흑산도 예리항 수협위판장을 방문하면 홍어 경매가 진행되는 진귀한 광경도 엿볼 수 있다. 많이 잡히는 날에는 1000여 마리의 홍어가 위판장을 가득 메워 온 천지가 알싸한 홍어 향으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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