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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92] 사망자 명단에 없는 이름
살아 있다면 남편은 지금 어디에?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0 06:30:10
 
 
피투성이가 된 남자의 몸과 동우의 얼굴이 겹쳤다. 1만m 상공에서 중력에 이끌려 추락한 동우의 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머리가 다 깨졌어. 얼굴 반쪽이 날아가서 그 녀석인 걸 알아볼 수도 없었어.” 언젠가 동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운은 몸서리를 쳤다. 그때마다 몇 번이나 차선을 위태롭게 넘나들었다.
 
차동우 씨 부인 맞으신 거죠?”
 
단발머리 여직원이 컴퓨터에 동우의 신상을 입력한 뒤 하운에게 물었다. 실종 여객기의 탑승자 가족 대기실은 공항 여객터미널 지하 1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항공사 직원들과 언론사 기자들, 가족들의 불안한 술렁거림이 공간을 채웠다. 그녀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직원은 그녀가 건넨 신분증과 모니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사로 보이는 여자에게 다가간 그녀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고 관록이 있어 보이는 여자는 자신의 모니터를 확인했다. 마우스를 움직여 몇 번이나 자료를 살피는 것 같았다. 타인의 불행에 익숙한 것 같은 여자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지만 하운은 눈앞에 닥친 불운을 예감할 수 있었다.
팀장님께서 말씀해 주실 거예요.”
여직원이 돌아와 말한 뒤 다음 번호를 불렀다.
 
잠깐 밖에 나가서 얘기하실까요.”
 
팀장이라는 여자가 하운에게 다가왔다. 외부에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미 확인된 사망자 명단이 있는 게 확실했다. 불길한 예감으로 하운은 몸을 떨었다. 복도에 나온 팀장은 우선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젊은 시절 스튜어디스를 했음 직한 상냥하고 편안한 미소였다.
 
다행스럽게도 사고기의 탑승자 명단에 남편분의 이름은 없습니다.”
사망자 명단에 동우의 이름이 없다는 말인 줄 알고 하마터면 하운은 안도의 숨을 내쉴 뻔했다.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팀장이 말했다. 하운은 그제야 여자의 말을 이해하고 혼란스러워서 고개를 저었다.
 
분명 오늘 온다고 했어요.”
 
모스크바를 출발해서 도착할 여객기가 더는 없지 않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팀장의 얼굴이 몹시 곤혹스러워 보였다.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팀장이 끝내 입을 열었다.
 
비행사와 도착 시간은 같지만 남편께서는 어제 들어오셨습니다.”
 
하운은 둔탁한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해석되지 않았다. 차라리 귀국 날짜가 다음 날이었다면 자신이 착각했다며 돌아설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랬다면 직원도, 팀장도 따로 불러 그녀에게 이야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오해가 행운이라며 축하해 주었을 것이다.
 
어제 도착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 거죠?”
 
하운이 홀린 듯 물었다. 항공사 직원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왜 나에겐 오늘 온다고 했을까요?”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 있으니 다행이지 않느냐고, 팀장은 위로하지 않았다.
 
그 사람, 동행이 있었나요?”
 
하운이 물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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