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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29] 아, 고구려 ②
요동도행군의 진군 경로를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6 06:30:20
 
 
한편, 고구려 장군 고문이 내지(內地)에서 군사 다수를 차출해서 요동으로 떠났다는 첩보를 받은 당 고종은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는 당장 이세적을 비롯해 소정방·임아상·방효태·계필하력 등의 장군을 불러들였다.
연개소문이 우리 계책에 넘어갔소. 그들이 평양 일대의 군사를 끌어모아 요동으로 떠났다 하니 지금 도성의 방비는 약화돼 있을 것이오. 평양도행군과 패강도행군, 그리고 옥저도행군은 바다를 건너 평양을 바로 공격하시오.”
반열에 있던 요동도행군 총관 계필하력이 앞으로 나섰다.
소장은 언제쯤 요동으로 떠날 수 있겠습니까?”
고종은 잠시 뜸을 들였다.
요즘 들어서 철륵이 고구려와 빈번하게 왕래하고 있다 하오. 그들의 동향을 봐서 결정할 테니 장군은 일단 준비만 하고 있도록 하시오.”
그동안 여러 번 당에 협조했음에도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자 이에 지친 철륵 사람들은 당나라를 원망하게 됐다. 철륵 지도부 내에 반당 기류가 팽배해지자 당 고종은 은근히 걱정됐다. 고구려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철륵이 변경을 공격해 온다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고종은 철륵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다가 여차하면 철륵 출신 계필하력을 보내서 그들을 제압할 작정이었다.
 
그해 7, 소정방이 이끄는 10만의 평양도행군과 임아상이 이끄는 8만의 패강도행군이 산동의 내주에서 병선 2000여 척에 나눠 타고 고구려 패수구로 나아갔다. 7만의 옥저도행군을 거느린 방효태는 양자강 하류로 내려간 후에 그곳에서 평양을 향해 출항했다.
소정방과 임아상의 군대는 묘도 군도를 거친 후 요동반도 남단으로 우회하여 패수구로 나아갔다. 고구려 해군은 전력이 약화돼 있었기에 당의 대군을 막을 수 없었다. 패수구 방어를 맡은 해군이 수백 척의 군선을 동원해 저항해 봤지만 2000여 척에 달하는 당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리하여 당군은 큰 피해 없이 패수 하구에 상륙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보장왕은 매우 놀라서 당장 어전 회의를 소집했다. 수십 명의 대신과 장군이 한결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늘어섰다.
보장왕이 침통하게 말문을 열었다.
당나라 도적들이 패수구로 상륙했다 하오. 어찌 이런 일이 생긴 것이오?”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이때 연개소문의 맏아들인 막리지 남생이 숙부 연정토를 힐끗 쳐다보며 아뢨다.
그러기에 소신이 해군을 증강하자고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연정토 장군이 이를 무시해서 오늘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겁니다.”
모든 이의 질책 어린 시선이 연정토에게 향했다.
연정토는 남생에게 눈을 흘겼다. 조카란 녀석이 앞장서서 자신을 공격한 것이 괘씸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보장왕이 연정토를 나무랐다.
고문 장군을 보내 육로의 방어선을 강화하면 수로의 수비가 약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어찌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는가?”
연정토는 아무 변명도 못 하고 연신 머리만 조아렸다.
둘째 왕자 막리지 덕남(德男)이 연정토를 감쌌다.
폐하, 옛일을 들춰 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다.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보장왕은 대막리지 연개소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패수구에 당도한 당군의 병력은 어느 정도요?”
건강이 좋지 않아 연정토에게 전권을 일임했던 연개소문은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자 전면에 나섰다.
소정방과 임아상이 거느린 군사가 합계 18만 정도입니다. 그 외에 방효태가 군사 7만을 거느리고 강남에서 출발한다 합니다.”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시오?”
압록수에서 4, 국내성에서 3, 평양 일대에서 3만의 군사를 차출해 요동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내지에 남은 군사가 3만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동부에서 4~5만의 병력은 모을 수 있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도성을 철저히 수비하면서 각지에서 구원병이 당도하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보장왕은 연개소문의 명쾌한 대안에 마음이 놓였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전황을 꿰뚫고 있는 모습은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어전 회의가 끝난 후 연개소문은 휘하 장수들을 자신의 부중에 모이게 했다. 장수가 다 모이자 대막리지는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도성 주변의 백성을 성안으로 불러들여라. 경작 중인 모든 곡물은 덜 익었더라도 수확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라. 쌀 한 톨·배추 한 잎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동부에 사람을 보내 군사를 도성으로 보내라 전하라. 지금 평양성에는 양곡과 병장기가 충분히 쌓여 있다. 모든 장수가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당군의 수효가 제아무리 많다 해도 물리칠 수 있다.”
 
명을 받은 장군들은 도성 군민을 독려하여 당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병사는 병장기를 점검하고 백성은 바위와 통나무를 성벽 위로 나르거나 성벽이 허물어질 것에 대비해 목책을 충분히 만들어 두었다.
그즈음 요동의 신성에서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고문의 군대가 요서 서안까지 진출하여 당군을 궤멸시켰다는 소식이었다. 평양성은 축제 분위기가 됐다. 사람들은 소와 돼지를 잡아 크게 잔치를 벌였다.
 
패수구에 상륙한 당군은 평양으로 진격해서 도성을 포위했다. 충차·운제·발석차 등 최신 공성 무기를 이용해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평양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방효태의 옥저도행군도 합세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평양성은 말 그대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이었다.
소정방은 방효태와 함께한 자리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겪어 봤지만 평양성 같은 곳은 처음이오. 백제의 사비성도 이틀 만에 무너졌는데 저 성은 한 달이 넘었는데도 함락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구려. 아군 사상자만 나날이 늘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오.”
방효태가 소정방을 위로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용병술이 하늘을 움직일 정도라 하지 않습니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했으니 천명을 기다려야지요.”
소정방은 기가 막혔다. 무슨 묘책이라도 없나 해서 얘기를 꺼냈더니 태평한 소리만 했다. 당군은 결국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그저 식량을 축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누방도행군이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은 당 고종은 분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음 같아서 정명진에게 책임을 물어 참수하고 싶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죽일 수도 없었다.
당 고종은 급히 이세적과 계필하력을 불렀다.
누방도행군은 고구려군에게 참패하고, 부여도행군은 영주의 유성에서 꼼짝 않고 있으니 이래서야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임금의 날 선 질책에 두 장수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이들이 아무 말도 없자 고종은 분을 누르고 계필하력에게 명령했다.
철륵이 요즘 조용한 것 같으니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진격하시오.”
이를 듣고 이세적이 임금에게 간언했다.
고문이 요동을 지키고 있다면 계필하력이 간다 해도 전세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계필하력이 벌컥 화를 냈다.
소장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닙니까? 저는 정명진 따위와는 다릅니다.”
이세적은 적이 당황했다. 계필하력을 깔봐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마땅히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가 무안해하자 고종이 나서서 말렸다.
이세적 장군의 본심은 그런 게 아니니 흥분하지 마시오.”
고종이 나서자 계필하력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소란이 가라앉자 이세적이 묘책을 내놓았다.
요동도행군의 진군 경로를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당 고종의 귀가 솔깃했다.
어떻게 바꾼단 말이오?”
계필하력 장군이 요동도행군 총관이라는 건 온 나라 사람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요동도행군이라는 명칭 자체가 요하를 건너 요동으로 간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긴 하오.”
그 점을 이용하자는 겁니다. 고구려의 고문이 요동도행군을 막기 위해 요동성에 와 있지 않습니까. 그의 군사 중 상당수가 서압록과 박작성에서 온 자들이니 압록수 하구의 수비는 약해져 있을 겁니다. 요동을 치는 척하면서 압록수 하구로 쳐들어가는 겁니다. 그런 연후에 평양으로 곧장 내려가면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실격허(避實擊虛)의 방책입니다.”
이세적의 계책을 듣고 나니 고종은 어둠 속에서 광명이 비치는 듯했다.
고종은 그 자리에서 계필하력에게 명을 내려 바다 건너 압록수로 나아가게 했다.
계필하력은 군사 6만을 병선 1000척에 나눠 태우고 천진항을 출발했다. 연안 항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압록수 하구에 다다랐다. 당군은 고구려 해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순조롭게 압록수 북안에 상륙했다.
당의 요동도행군이 압록수 하구로 침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연개소문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당군의 전법을 꿰고 있었다. 벌써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장자인 남생을 압록수에 파견해 둔 상태였다.
 
[글 임동주 그림 이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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