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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23] 낙화암 ④
이번에 왜에 가면 풍 왕자의 귀국을 도모해 주시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07 06:30:21
 
 
제명왕은 사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백제가 처한 상황부터 물었다. 귀지는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과 왕족을 비롯해 대신들과 백성이 잡혀간 일을 소상히 아뢰었다.
다행히 지금은 폐하의 사촌인 복신과 흑치상지 장군 등이 군사를 일으켜 외적을 몰아내기 위해 힘껏 싸우고 있습니다. 특히 복신 장군의 부대는 얼마 전 사비성 탈환에 나설 정도로 군세가 대단합니다.”
 
제명왕은 의자왕이 당으로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왜로 출가하기 전 사비성에 있을 때, 사촌인 무왕은 그녀를 살갑게 대해 주었다. 그녀도 그를 오라비처럼 따랐다. 그런 사람의 자손들이 산 설고 물 선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통하게 앉아 있던 여왕은 탄식을 토하며 말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용기와 담력이 뛰어나신 조카님에게 이런 일이 닥치리라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여왕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졌다.
우리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느냐?”
제명왕의 물음에 귀지는 엎드려 간청했다.
복신 장군은 한시라도 빨리 당과 신라의 도당을 백제 땅에서 몰아내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폐하의 군사 원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왕은 결연한 눈빛으로 태자 중대형을 바라봤다.
백제와 왜는 본디 한 뿌리이거늘 내 어찌 본국의 어려움을 모른 체할 수 있겠느냐.”
이 당시 나라의 실세는 중대형이었다. 여왕이 아무리 의지가 굳다 한들 그가 반대하면 군사 한 명, 병선 한 척도 움직일 수 없었다.
태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폐하께서 결정하시면 소신은 그저 따를 뿐입니다.”
중대형은 뜻밖에 선선히 백제로 구원병을 보내는 것에 동의했다. 막강한 나당연합군을 상대하려면 왜의 전력을 총동원해야 했으므로 결코 즉석에서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중대형이 참전을 결심한 것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하고 나면 그 여세를 몰아 왜를 침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백제의 관민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싸우고 있는 이때 군대를 파견해서 도와준다면 그들을 몰아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더구나 왕실의 뿌리가 백제인 만큼 모국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입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백제를 구원할 군사를 동원한다고 발표하면 열도(列島) 곳곳에 자리 잡은 백제계 호족들이 군사를 내어놓을 것이니 설령 원정에 실패하더라도 이들을 통제할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중대형은 이런 여러 요인을 고려해서 백제에 구원군을 파병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왜의 조정에서는 백제에 구원군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국왕과 태자가 이미 결정한 것을 신하들이 뒤엎을 수는 없었다.
최종적으로 파병이 결정되자 귀지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 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귀지는 주위를 살피다가 무리 중에 섞여 있는 왕자 풍()과 눈이 마주쳤다.
제명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풍 왕자와 함께 귀국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풍을 귀국하게 해 달라고?”
왜 왕이 되물었다. 왕자 풍은 의자왕의 아들로, 일찍이 왜와의 친선을 도모하는 의미로 이곳에 보내졌다. 제명왕은 그를 아껴서 친손자처럼 여기고 있었다.
폐하와 왕자들이 모두 당으로 잡혀간 현시점에 왕통을 이을 사람은 풍 왕자뿐입니다. 우리는 왕자를 왕위에 옹립하고 그를 구심점으로 일치단결하여 나당연합군과 싸우고자 합니다.”
왜 왕은 귀지의 청을 어렵게 승낙했다.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풍 왕자를 보낼 수밖에 없겠구나.”
제명왕은 총애하는 왕자를 위험한 전장에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조국이 위기에 처한 마당에 일국의 왕자가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왕자 풍이 왕위에 오르면 양국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왜에 사신으로 가라는 복신의 명을 받고 물러났던 그날 밤, 도침이 은밀히 귀지를 찾았다.
아무래도 복신 장군만을 믿고 대사를 도모하기는 어렵겠소. 그는 야심만 클 뿐 나라를 일으킬 만한 재목은 아닌 것 같소.”
도침의 거침없는 비판에 귀지는 당황했다.
복신 장군은 백성에게 신망을 얻고 있지 않소.”
그것은 국왕의 사촌이라는 허울 때문이오. 만약 폐하의 적통을 이은 왕자가 등장한다면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설 거요.”
그렇지만 지금 백제 땅에 남아 있는 왕의 적자(嫡子)가 없지 않소.”
귀지는 답답하다는 듯 도침을 바라봤다. 그는 늘 대사를 존경하고 조언을 귀담아들었지만, 이번만은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대를 찾아온 것이오. 이번에 왜에 가면 풍 왕자의 귀국을 도모해 주시오.”
귀지는 그제야 도침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왕자 풍이 귀국한다면 왕위는 당연히 적통인 그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그는 왕자를 내세워 복신의 세력을 꺾으려 하고 있었다.
이 일은 복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진행해야 하오.”
귀지는 도침이 뿜어내는 한기(寒氣)에 얼어붙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력 661, 귀지는 마침내 왕자 풍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파도에 따라 넘실거리는 뱃전에 서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일이 걱정됐다. 과연 복신은 왕자 풍의 출현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 나당연합군과의 싸움은 어떻게 전개될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돛에 바람을 가득 안은 배는 출렁이는 물결을 무심히 가르며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백제의 부흥 운동
 
봄기운 무르익은 봉수산에는 울긋불긋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돌 틈에서 돋아난 풀 덕분에 성벽은 마치 새 옷을 갈아입은 듯 보였다.
흑치상지는 성벽 보루 위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야가 탁 트여 들판과 개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만일 적군이 쳐들어온다면 그 움직임을 세세히 포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험준한 산봉우리에 자리한 것만큼이나 임존성을 공략하기 힘든 이유였다.
흑치상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임존성이 천혜의 요새라고는 하지만 나당연합군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복신과 도침이 군대를 이끌고 합류했고, 왜에서 귀국한 왕자 풍을 맞이하여 국왕으로 옹립했으니, 이제 임존성은 명실상부 백제 부흥군의 중심지라 불릴 만했다. 부여풍(扶餘豊)이 가세했다는 소식이 백제 전역에 전해지자 서부와 남부의 부흥군 세력까지 호응하면서 자못 기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흑치상지는 앞날을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당나라 조정에서 백제의 상황을 수수방관할 리 없기에 당군이 다시 바다를 건너는 건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분이었다. 한때는 둘도 없는 동지였던 복신과 도침의 갈등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들 간의 암투는 백제 부흥군의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두 사람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왕자 풍의 등장 이후였다. 부여풍이 백제로 돌아오자 부흥군의 거두인 복신과 도침 그리고 왕자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생겼다. 도침은 정통성을 내세워 왕자 풍을 왕위에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법을 따지더라도 왕통을 잇는 부여풍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복신은 눈앞까지 다가왔던 옥좌를 놓치게 돼서 분통이 터졌지만,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에 도침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도침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제껏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이임에도 앞장서서 왕자 풍을 옹립한 그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사사건건 티격태격했다.
도침은 풍왕(豊王)을 등에 업고 스스로를 영군장군(領軍將軍)이라 칭하며 주도권을 쥐려 했다. 이에 반발한 복신은 자칭 상잠장군(霜岑將軍)이라 말하며 자기 세력을 끌어모았다. 흑치상지는 이들 사이에서 중재하려고 애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 무렵, 당 조정에서 파견한 유인궤(劉仁軌)가 군사를 이끌고 백제 부흥군 소탕 작전에 나섰다. 그는 왕문도의 군사 7천을 인계받고, 사비성에 있는 유인원의 군사를 휘하에 거두었다. 그래도 병력이 부족하자 신라 군사를 징발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백제 부흥군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쥔 신라가 호락호락 당나라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신라는 사비성 전투에서 복신을 몰아낸 전과를 내세워 당군을 견제했다.
유인궤는 전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묘책을 궁리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풍왕을 회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를 설득하여 항복을 받을 수만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백제 땅의 소요를 평정하고, 당의 지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마침 이때 임존성으로부터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선전포고가 전해 왔다. 유인궤는 때가 늦기 전에 서둘러 사자를 보냈다.
 
장군, 저 밑에서 흰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흑치상지는 군사가 가리키는 산기슭을 내려다봤다. 당나라 갑옷을 입은 무리가 깃발을 흔들며 올라오고 있었다.
흑치상지는 당의 사자 일행을 성안으로 맞아들여 풍왕 앞으로 데려갔다. 당사(唐使)는 풍왕에게 예를 드린 후 공손하게 말했다.
우리 장군께서는 되도록 충돌을 피하고 싶어 하십니다. 시중에 당군이 백제 사람을 잡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해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만일 지금이라도 성문을 열고 항복하신다면 국왕의 예로써 대할 것이며, 군사들의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백제는 당에서 바닷길로 수천 리 떨어져 있어 너무 멀다. 그래서 직접 통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백제 영토를 신라에 맡기면 그들이 너무 강성해질까 염려스럽다. 그런 까닭에 현왕을 웅진 대도독으로 삼아 백제를 통치하게 할 생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군사를 일으켜 피를 보지 말고 웅진 대도독이 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침은 사자의 말을 듣고, 이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사신을 객관으로 보낸 후 국왕에게 독대를 청했다.
사실 우리가 백제의 부흥을 꾀하고는 있으나 왜와 고구려의 지원 없이는 힘듭니다. 신라의 김춘추가 죽었다고는 하나 그의 아들 법민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니 일단 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왜군이 당도하면 반격을 재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풍왕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일본에서 제명왕과 함께할 때는 차라리 속이 편했다. 백제 왕을 시켜 준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그를 둘러싼 상황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백제인으로서의 자존심은 꺾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거짓 항복이라 해도 마땅치 않은 일이었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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