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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16] 황산벌 전투 ①
적은 군사로 적군을 상대하려면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야 합니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24 06:30:00
 
 
서력 6606, 백제 왕실의 편전에는 무더운 바깥 날씨와는 달리 얼음장 같은 냉기가 흘렀다. 의자왕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줄지어 선 좌평·달솔 등의 대신들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당의 대선단이 덕적도 앞바다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의자왕은 반신반의했다. 그동안 신라의 무열왕이 여러 차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원군을 요청했지만 당나라는 고구려를 의식해서 군사를 움직이지 못했다. 백제는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해 신라와 당을 떼어 놓으려 애썼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한편 신라와 당의 연결 통로인 당항성을 공격해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백제의 작전은 실효를 거뒀다. 당 태종은 신라 사신의 요청을 받고도 백제에 신라를 공격하는 일을 멈추라는 내용의 국서를 의례적으로 보냈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사신이 오갔지만 당나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느라 백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로써 신라는 철저히 고립되는 듯했다.
 
그런데 근래에 포착된 신라군의 움직임이 백제를 긴장하게 했다. 김유신이 이끄는 군대가 북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백제 조정이 주목하는 가운데 신라군이 남천정(南川停·이천)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자왕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남천정은 변방의 경계를 맡은 신라 10정 중 하나로 고구려와의 국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백제를 공격할 작정이었다면 백제와의 접경 지역으로 진군했어야 했다.
백제의 군신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바로 태자 시절부터 의자왕을 호위했고 이제는 도성 수호를 맡은 달솔 계백(階伯)이었다.
 
계백은 대대로 무()를 숭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담력이 세고 체격이 건장하여 일찍이 금군으로 발탁되었는데 그를 눈여겨본 태자 시절의 의자가 자신의 호위로 삼아 늘 옆에 두었다.
무왕 시절, 의자는 성왕 이후로 신라에 열세를 면치 못하는 백제의 처지에 울분을 품었다. 그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신라는 물론 고구려까지 아우르겠다고 다짐했다.
무왕이 죽고, 드디어 왕좌에 앉은 의자는 그간 구상했던 강력한 백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실행했다. 귀족의 권력을 제한하고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친정(親政) 체제를 구축했다.
 
계백은 의자왕의 명을 받아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신라 공략을 위한 군사 소집과 군량미 확보를 진두지휘했다. 대야성에서의 승리나 당항성 점령 같은 대규모 군사 작전의 성공은 그가 이룬 성과였다. 이로써 백제는 신라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휘몰아친 변혁의 바람은 내부에 심각한 분열을 불러왔다.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 온 귀족들이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의자왕과 대귀족의 반목이 커질수록 계백의 근심도 늘어 갔다. 국왕의 소신과 강한 의지는 존경할 만했지만 쇠도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었다.
 
편전 안은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대신들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탓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좌평 의직(義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나라 군사 중에는 물에 익숙지 않은 자가 많습니다. 먼 길을 항해해 왔다면 분명히 노독(路毒)이 쌓였을 겁니다. 그들이 기운을 차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당군을 제압하면 신라도 겁을 먹고 함부로 진격해 오지 못할 겁니다.”
속전속결로 당군을 물리치면 신라를 상대하는 일도 수월할 거라는 얘기였다.
달솔 상영(常永)이 반대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군은 먼 길을 왔기에 속히 싸우려 할 겁니다. 대군의 예봉을 막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패한다면 더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에 비해 신라는 위협적이지 않은 상대입니다. 그러니 먼저 신라를 쳐서 기세를 꺾어야 합니다. 그 후에 당군을 맞아 수성전을 펼친다면 나라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습니다.”
신라를 선제공격한 후에 당군과는 지구전을 펼치자는 의견이었다.
두 사람이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쉽게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당군의 침입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닥친 의자왕은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당군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쉽게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군사를 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계책을 써도 양쪽 모두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주장이 난립하는 가운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계백이 입을 열었다.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에 귀양 가 있는 흥수에게 대책을 물어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지략이 뛰어난 흥수라면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듯했다.
의자왕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간언을 듣고 화가 나서 멀리 귀양을 보내기는 했지만 흥수라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며칠 후 고마미지에 갔던 사자가 돌아왔다. 그의 전언으로는 기벌포와 탄현을 굳게 지키면 적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다 했다.
계백은 이를 듣고 감옥에서 죽어 간 성충을 떠올렸다. 흥수의 계책은 성충이 말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백제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임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했다.
그자는 죄인입니다. 폐하께 원망을 품고 있는 자의 말을 어찌 믿습니까.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흉계일 겁니다.”
계백이 나서서 흥수를 옹호했다.
흥수가 폐하께 무례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뉘우치고 있을 겁니다. 적은 군사로 적군을 상대하려면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의 말대로 기벌포와 탄현만 한 곳이 없습니다.”
 
의자왕은 답답했다. 계백의 말을 따르고 싶었지만 대다수 대신은 임자를 지지했다.
국왕이 머뭇거리고 있자 임자가 대안을 내놓았다.
당군이 기벌포를 지나게 한 후에 백강으로 유인하는 겁니다. 강 하구의 강폭이 좁고 물살이 빨라 배 두 척이 한꺼번에 지나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강가에 매복해 있다가 공격을 펼치면 단번에 적군을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탄현은 길이 협소해서 고개를 넘으면 대오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군이 고개 아래에서 기다리면 쉽사리 신라군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새가 스스로 조롱에 들어가고, 물고기가 자진하여 통발에 갇히는 격입니다.”
의자왕은 존망의 갈림길에서 흥수를 버리고 임자를 택했다. 그 순간, 백제의 운명을 결정지을 주사위가 던져진 것이었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듯이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다. 계백은 편전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으면 조회를 마치고 나오는 대신들과 분주히 오가는 궁인들로 북적거릴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괴괴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계백은 정적을 참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날따라 편전 앞마당이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대전 안으로 들어서니 의자왕이 홀로 옥좌에 앉아 있었다. 금관에 달린 불꽃 장식이 힘없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폐하, 소신 계백입니다.”
의자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계백을 봤다. 상처 입은 맹수와 같은 눈빛이었다.
대신들은 다 어디 있느냐?”
계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군이 백강에 들어서고 신라군이 탄현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큰소리치던 임자를 비롯한 신하들은 식솔을 이끌고 서둘러 도성을 탈출했다.
귀족들이 사라지자 사비성에는 변변한 군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의자왕이 임자와 금화의 간계에 넘어가 왕자들을 전국 곳곳에 파견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가병뿐 아니라 도성의 병력 일부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의자왕은 급히 지방의 군사를 소집했다. 하지만 5방의 방령뿐 아니라 많은 군장이 대귀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성충이 옥사한 후 등을 돌린 이들은 국왕을 돕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이제 의자왕에게 남은 것은 계백과 그 휘하의 도성 수비대가 전부였다.
짐이 어리석었다. 흥수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 어찌하면 좋겠는가?”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이제 가망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너무 심려치 마소서. 소신이 목숨을 걸고 저들을 막아 내겠습니다.”
계백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걸 잘 알았다. 그래도 잠시나마 주군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계백은 자신이 늘 금과옥조로 여기는 글귀를 떠올렸다.
 
나라가 있기에 내가 있으니,
내 목숨은 나라를 위해 있다.
 
온조십계(溫祖十戒)에 나오는 구절로 백제의 무사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담고 있는 말이었다.
 
계백은 메마른 고목처럼 앉아 있는 의자왕을 뒤로하고 궁궐 밖으로 나왔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말에 올라탄 그는 빗속을 뚫고 집을 향해 질주했다. 달리는 동안 그의 얼굴은 온갖 번민으로 창백하게 변해 갔다.
 
계백이 집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들은 부인 사()는 근심 어린 얼굴로 마중을 나왔다. 장군은 마당에 서서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었다. 갑옷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상처 입은 황룡의 비늘 사이로 흐르는 핏물처럼 보였다.
어찌 비를 맞고 계십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평소 같지 않은 남편의 행동이 사씨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계백은 대꾸도 하지 않고 빗물이 흥건히 고인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망설이는 중이었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지 자문(自問)하고 있었다.
부인 사씨는 아름답고 현숙한 여인이었다. 백제를 대표하는 명문가의 영애로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그녀는 주저 없이 계백을 선택했다.
혼인 후 사씨는 사치를 멀리하고 묵묵히 남편의 일을 도왔다. 계백이 충심으로 나랏일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내조 덕분이었다. 친정과 대립하고 있는 남편을 지지한 그녀의 믿음은 계백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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