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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14> 40년 이상 中간첩으로 암약한 CIA 간부 ‘친우타이’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09 06:30:5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1985년 11월22일 오후 미국 워싱턴 D.C. 알렉산드리아의 한 주택에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여기서 간첩 등 17가지 혐의로 긴급 체포된 사람은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간부이며 퇴직 후에도 CIA 자문역으로 활동해 온 친우타이(金無怠)이다. 미국 이름은 래리 우 타이 친(Larry Wu Tai Chin). 그는 미 육군과 CIA에 근무하면서 무려 40년 넘게 중국 공산당 스파이로 암약해 왔다.
 
친우타이(19221986)는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1943년 푸져우(福州) 미군연락소 통역원으로 선발되었다. 이 무렵 친우타이는 중국 공산당 정보국에 포섭되어 관련 정보를 중공에 넘기고 있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베이징으로 돌아와 옌칭(延慶)대학(현 베이징대)에 다녔다. 이후 상하이 유엔구호국에 잠시 근무하다가 미군부대 통역관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1948년 상하이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했다. 1949년 결혼한 후에는 홍콩 주재 미영사관에 파견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한국으로 파견되어 1년 동안 미 육군연락사무소(ALO)에서 포로로 잡힌 중공군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통역과 신문자료 번역을 담당했다. 이때 그는 고의로 오역을 함으로써 미군이 반격 기회를 놓치도록 했다. 또한 신문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수천 명 중국 포로의 신원 정보를 중공 측에 제공했다.
 
▲ CIA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였던 친우타이가 40여 년간 중국 스파이로 암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필자 제공
  
친우타이는 1952년 홍콩영사관으로 복귀해 미국 국무부(실제는 CIA 소속) FBIS(해외방송정보국)의 오키나와 지부에서 근무했다. 이곳에서 CIA는 중국 남부지역을 대상으로 방송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1965년에 친우타이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CIA 중국 분석가로 승진해 중요 비밀에 접근할 수 있었다. 
 
초기에 CIA에서 그가 수행한 주 업무는 중국에서 나오는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정보)의 번역 업무 총괄이었다. 직책을 이용해 그는 당시 중국 내에서 암약한 CIA의 비밀공작원이나 현지 협조자들이 보내온 온갖 민감한 정보와 CIA에 포섭된 대만인들이 제공한 고급 정보 보고서 등을 쉽게 열람할 수 있었다. 그는 휴가 때마다 홍콩으로 가서 공작관인 지창성을 접선하여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정보 제공의 대가로는 거액의 현금과 값비싼 음식·미녀들과의 데이트 등이 제공되었다.
 
이후 그는 CIA 내 동아시아 정책 연구실 국장으로 승진하여 중국·대만·일본·한국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정보분석을 담당했다. 그리고 여기서 접한 핵심 기밀을 중국에 빼돌렸다. 1981년 7월 CIA에서 퇴직했고 CIA로부터 봉사메달을 받았다. 퇴직 후에도 그는 계약직인 CIA의 자문관으로 계속 일하며 관련 정보를 접했다.
 
친우타이의 스파이 행각이 포착된 것은 1982년 9월경이다. 당시 FBI 중국방첩국 책임자인 스미스(IC Smith)는 CIA로부터 미국 정보기관에 침투한 중국계 간첩에 대한 첩보를 받았다. 이 첩보의 원천은 중국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코드명 ‘플레인즈맨’이었다. 1983년 4월 미국 해외정보 감시법원은 FBI가 신청한 감시·추적·조사 권한을 승인받아 ‘독수리 발톱 작전’이라는 스파이 색출 공작에 본격 착수했다. 그 결과 친우타이가 중국에 몇 건의 비밀을 누설하는 증거를 포착했다.
 
결정적 단서는 1985년 중국공산당 국가안보부에서 미국 정보업무를 총괄하던 북미정보국 국장 지창성이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에 나왔다. 그는 직접 친우타이를 포섭해 오랫동안 지도·감독하던 상급 공작관이었다. 그를 통해 CIA는 자기 조직에서 암약하던 친우타이의 실체를 파악했다. 또한 미국에서 암약하던 중국 핵심 스파이망을 파악해 와해시킬 수 있었다. 
 
미국 의회는 지창성의 안전을 보호하고 그의 신원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 법안을 즉시 통과시켰다. 또한 FBI는 친타우타이의 암호명과 중국 국가안보국과의 통신 증거를 확보했다. CIA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였던 친우타이가 40여 년간 중국 스파이로 암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친우타이가 중국에 넘긴 수많은 정보 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960년대 CIA는 중국 국민당 출신 조종사를 활용해 U2 정찰기로 중국 본토를 정찰했는데 정찰 계획이 누설되어 번번이 중국에 의해 격추당했다. 1972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 당시 중국 공산당 정부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대중 정책을 사전에 파악해 손바닥에 올려 놓고 협상을 했다. 친우타이는 1960년대 미국의 중국 정책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 중국 공산당과 수교하려는 닉슨 대통령의 희망에 대한 정보 등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중국 공산당에 계속해서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미국·홍콩·토론토·마카오·베이징 등을 여러 차례 방문해 중국에 각종 비밀문서와 사진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스파이 행위의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총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챙겼다. 그러고는 라스베이거스 등 카지노를 들락거리면서 도박으로 돈의 출처를 숨겼다. 1985년 11월22일 체포된 친우타이는 1986년 간첩 등 17개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선고일(3월4일)을 10여 일 앞둔 2월21일 63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자살했다.
 
친우타이가 체포되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중국 공산당 외교부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날조된 것이라며 친우타이의 존재를 부정했다. 2019년이 되어서야 중국 정부는 중국공산당 중앙문학사연구소의 기관지 ‘세기(世紀)’를 통해 친우타이가 ‘조국(중국)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하며 그의 업적을 인정했다. 그의 스파이 행각은 1997년 제프리 리첼슨이 저술한 ‘세기의 스파이’에 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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