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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65] 완치의 두 번째 증거
어둠과 빛 사이에서 피어난 눈꽃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05 06:30:10
 
 
여기, 해월영이 치료의 증거라고? 정하운은 속사포처럼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와락 쏟아 놓고 있었다.
 
이 별장에서, 누굴, 치료했다는 겁니까?”
 
나는 단번에 하운의 이야기에서 핵심을 낚아챘다. 2층에서 본 액자 속 여인이 떠올랐다.
 
최 박사의 아내가, 그분이 나와 같은 증상을 앓았단 말입니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최 박사가 치료했고 그분은 살았단 말인가요?”
 
정하운이 이야기를 어떻게 계속할지 생각하는 동안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한 발 더 밀어붙였다.
 
아니겠죠. 살았다면 자신을 벌하듯 이렇게 외진 곳에서 혼자 여생을 보내진 않겠죠.”
 
나는 정하운이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지껄였다. 2층 침실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풀렸다. 여자는 별장에 없다. 최 박사는 오랜 세월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별장이 치료의 증거라고? 그렇다면 치료는 했지만 죽은 것이다. 그러면 실패가 아닌가. 치유되고 노환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니다. 그랬다면 액자 속 사진은 더 나이 든 모습이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자고 스스로 다그치면서도 희망과 절망의 계곡을 헤매느라 내가 멋대로 추론할수록 정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그래서 그녀가 설명해야 할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 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럼 실패했다는 거잖아요.”
 
내 멋대로 추리하고 파편 같은 생각들을 쏟아 놓던 나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게 아니에요!”
 
엉터리 논리로 내린 섣부른 결정과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정하운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가 있어요.”
 
정하운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요!”
 
?”
 
나라구요. 당신이 살 수 있는 두 번째 증거. 바로 나, 정하운이라고요!”
 
시동을 끄지 않은 자동차의 전조등이 힘껏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양쪽 전구에서 쏘아진 두 개의 밝은 빛은 하나로 만나 둥글게 퍼지며 마주 보고 있는 정하운과 나를 비추었다. 얼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하운과 내 앞에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반딧불처럼 저마다 빛을 안고 하얗게 반짝였다. 검은 하늘에서 쏟아진 눈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녹아 사라졌다. 그녀의 어깨 위에 잠시 닿았던 눈송이 하나만은 가냘프지만 강인한 희망을 품은 민들레 씨앗처럼, 다시 바람에 실려 어둠 저편으로 날아갔다.
 
전조등이 그려 놓은 빛의 동그라미, 그 안에서 수천 송이 눈꽃들은 내려앉았다가 솟구치고 다시 소용돌이치다 사라졌다. 정하운이 완치의 증거다! 나는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심장이 미친 듯 뜨겁게, 그리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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