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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63] 자네도 부검대 위에 눕게 될 걸세
살고 싶다면 뜨거운 심장을 가져오게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03 06:30:10
 
 
자네도 이 부검대 위에 눕게 될걸세.”
 
,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내가 맞닥뜨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은 메스를 내려놓고 라텍스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테이블을 돌아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이런, 겁을 잔뜩 집어먹었군.”
 
노인은 잔혹하리만큼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네의 육신을 해부하게 될 거라는 말이지.”
 
낮고 음울한 목소리로 노인이 말했다. 정하운이 내민 동의서가 떠올랐다. 결국 그녀가 원한 건 내 시체였단 말인가?
 
살고 싶은가? 그래. 살고 싶겠지.”
 
노인은 불쑥 내 양쪽 팔을 꽉 붙잡았다. 세상 최고의 비밀을 발설하는 것처럼 내 귀에 입을 바짝 들이대고 속삭였다.
 
뜨거운 심장을 가져오게.”
 
나는 또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노인에게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내 팔을 붙잡고 있는 노인의 손아귀는 의외로 힘이 셌다.
 
아니. 자네는 할 수 없을 거야. 그 눈이 곧 자네를 파먹을 테니까. 무덤이 자네의 집이 될 테니까.”
 
어두운 실내의 부분 조명이 노인의 주름살과 눈빛을 심술궂고 괴상하게 보이도록 일그러뜨렸다. 산장에 올라오며 보았던, 버려진 듯 잡초 무성한 무덤들이 떠올랐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힘껏 노인의 손을 뿌리쳤다. 기어이 뒷걸음질을 치고는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올랐다. 끼드득거리며 나무 계단과 마룻바닥이 나를 비웃었다. 후후흣, 뒤통수에 대고 노인이 내뱉는 씁쓸한 웃음소리가 내 목덜미를 금방이라도 움켜잡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무작정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시리고 음산한 밤바람이 나를 가로막았다. 흘낏 뒤돌아 본 창가에 노인의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머리카락이 쭈빗 곤두섰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낮은 가지들이 얼굴을 할퀴고 바람은 뺨을 때렸다. 멀리서 밀려온 파도 소리가 와글와글, 유령처럼 뒤쫓아 오며 내 숨통을 조였다. 발바닥에 닿는 충격이 심장을 뚫고 가시 덮인 눈동자까지 재빠르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죽음과도 같은 통증에 대한 예감이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점점 가까워졌다. 빛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밝아졌고 달무리처럼 둥근 모양으로 크게 부풀더니 산장으로 향하는 비탈길 입구에서 턱, 하니 나를 가로막았다. 숨을 헐떡거리며 나는 불빛 한가운데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가 내 앞에 덜컥,멈춰 섰다. 전조등 불빛이 눈 부셔서 고개를 돌린 채 손으로 빛을 가렸다.
 
마중 나온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라고 생각한 순간, 자동차 문이 열렸다. 하운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헤드라이트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보자마자 복잡한 감정들이, 이곳으로 나를 보낸 데 대한 의문과 원망이 한꺼번에 뒤섞여 목구멍으로 치밀고 올라왔다. 하지만 맨 앞에 선 감정은 깊은 안도감이었다. 와락 끌어안고 싶을 만큼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반가웠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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