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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죽음에 초연한 사람들이 사는 섬진강의 기억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18 06:31:10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전라도 광양 매화마을 바위에 쓰여진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이다.
 
그는 행복했다. 웬만하면 교장으로 정년퇴직할 60대 초반인데 흐믓하게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다. 교사이기 앞서 그는 산악인이다. 히말라야 14(낭가파르바트·K2·브로드피크·가셔브롬가셔브롬디올라기리·안나푸르나·마나슬루·시샤팡마·초오유·로체·에베레스트·마칼루·칸첸중가)를 오르며 끊임없이 죽음과의 사투를 벌인 산악대장. 학생들에게 단 한 번도 꾸지람을 내리지 않던 그의 눈빛이 옛날식 다방 커피 한 잔에 흔들린다. 불알친구로 평생 그리움으로 기억된 필자가 자기 앞에 있어 줘서 고맙고 살아 있어 고맙단다.
 
1980년대 산을 오르다 크레바스를 건너지 못한 셀파 앙핑조가 동태처럼 웅크려 있었다. 얼음처럼 죽은 것이다. 꽃도 피우지 못한 현조(전남대)가 극한의 오름을 이기지 못하고 젊은 꿈을 접었다. 육지의 꿈을 꾸던 제주도 태생 희준이가 고산준령에서 얼음덩이가 된다.
 
2004년 네팔·티벳을 향하던 광주 청년 행수는 마나슬루 등반 도중 얼음덩이가 된다. 허물없이 지내던 홍 대장의 후배 창호·성호 청년이 8000m 14좌를 완등하기 전 하늘의 별이 된다. 그는 칸첸중가를 오르던 중이었다. 4년 전 대학생 홍빈이는 맥킨리 등반 도중 양팔을 내주고 목숨은 건진다. 기쁨도 잠시 브로드피크에서 추락해 하늘의 별이 된다. 한국인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박영석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름다운 청년은 등반을 마치면 프랑스로 가곤 했다. 그 청년이 눈 덮인 빙벽에서 실종되고 5년 후 프랑스에서 5살 난 아이를 안은 여인이 눈물을 머금고 나타난다. 1977년 알고 지내며 그렇게 따르던 고상돈의 죽음을 시작으로 소중한 생명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새벽에 눈을 떠도, 이른 오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먼저 간 이들이 그에게 묻는단다. 왜 산에 오르고 누구는 죽는가.
 
 
 
 
 
 
물은 아래로 흐르고 꽃은 위로 흐른다. 가자 가자 매화마을로.”
 
벚꽃축제가 마지막 절정을 다한 3월 중순 어느날 어스름이 어둑어둑 내린 늦은 오후, 백두의 이 풍진 세상을 돌고돌아 지리산을 품고 흐르던 광양 섬진강 기슭에 움푹 패인 매화마을을 걸었다. 하얀 백양목천을 덮어 놓은 듯 만발한 매화 동산 중간중간에 진분홍빛 홍매화의 황홀함이 친구의 허망함을 달래 주려는 듯 애처롭다.
 
금수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는데 무궁화 이 강산이 망하고 말았구나” “내게 죽어야 할 의리는 없지만 다만 나라가 500년이나 선비를 길러 왔는데 그 나라가 망하는 날 죽는 선비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광양 서석촌에서 태어난 매천(梅泉) 황현은 나라가 부패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그리고 1910년 국권 침탈로 치욕스러운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56세에 구례 대월헌 구안당에서 자결한다.
 
광양 진상면 삼정 마을.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꽃향기가 구례 산수유 향기와 함께 흐르다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부활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와 함께 섬진강을 남해에 양보한다. 배알 도가(悼歌) 마지막 절을 하며.
 
섬진강 민물과 남해 바닷물이 교차하는 우거진 갈대밭에 강렬한 햇빛이 포말처럼 부서진다. 3월이면 순진한 매화 마을에 핀 홍매화의 선분홍빛 고결함이 섬진강 기슭을 흐르고 7월 백중(百中)이면 부드럽고 찰진오사리 갈대꽃은 우리네 구석진 곳을 쓸어 주는 빗자루로 환생할 것이다.
 
아버지는 큰일 하러 일찌감치/ 멋 부린 형 누나는 버스 놓쳐 발만 동동/ 엄마는 온 집안을 쓸고 닦다 골병이/ 허둥대는 아침이 지나자 처마 끝 햇볕이 그제서야 마루에 걸터앉는다/ 암탉 꽁무니를 지겹게 따라다니는 병아리들/ 마루 위 벽에는 째깍거리는 벽시계/ 나란히 늘어선 흑백사진들의 오래된 표정들/ 그 아래 세월에 지친 빗자루 하나 늦은 오전을 쉰다// 산하를 굽이치던 힘찬 생명/ 세상이 쏟아 낸 배설물을 품고 흐르다/ 탐욕의 끄트머리 밀물과 썰물의 소용돌이에서 서럽게 운다/ 그 배설물에 뿌리를 박고 억척스레 일어서는 생명들/ 농부는 배를 타고 찰진 생명을 쪽배 한가득 싣고 왔다/ 며칠동안 그늘에 말린다/ 몇 바가지 물을 훽훽 뿌린 뒤 한 가닥 한 가닥 곱게 편다/ 엄지손가락 굵기만큼 추려 묶음을 만든 수십 개의 묶음을 큰 묶음으로 합친다/ 갖가지 매듭을 넣는 꽃비는 3일이나 걸리고 농부의 손은 거친 바위가 되었다/ 걸터앉은 햇볕은 어느새 졸고 제 할 일을 마친 마루 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이 섬진강을 바라본다’ (정창옥의 섬진강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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