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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56] 가족이란 짐을 지고 떠난 사람들
특별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하던 순간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25 06:30:10
 
 
에바의 원래 이름이 갑순이었구나,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평소 촌스럽게만 느껴지던 갑순이라는 이름이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다음 이야기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에바의 글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 앞에 선 죽음이 발산하는 불안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갑순, 아니 에바의 다음 편지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할아버지와 어머니, 언니들이 북한군에게 총살당하는 참극을, 그녀 혼자 살아남은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하고 있었다.
 
전쟁 후 할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챈 친척 집에 천덕꾸러기로 얹혀 살다가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간 사연도 차분히 적었다. 쌀 배급소를 하며 지역 상권을 크게 갖고 있던 시아버지는 평소 갑순의 할아버지를 존경하던 상인이었는데, 그의 손녀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며 갑순을 며느리로 삼았다. 여자가 배워서 뭐 하냐며 시어머니가 지청구를 해댔지만, 학교에 보내 공부도 시켰다. 그러나 너무 어렸던 갑순은 결혼 후 몇 년간 초야도 치르지 못했다. 열일곱 살에 겨우 아이를 낳았지만 이내 홍역으로 죽었다.
 
남편은 그녀보다 아홉 살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영락 철없는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 아버지 덕에 초등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을 얻었으면서도 도박중독자였고 신작로 술집의 작부들은 거의 모두 그의 애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들을 낳았다며 갓난아이와 여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시아버지는 당장 내쫓으라고 호통을 쳤지만 시어머니를 이기지는 못했다. 갑순은 안방을 내주고 시어머니 구박과 첩의 시중까지 견뎌야 했다.
 
옛날이야기에서나 들었던 한 많은 여인의 삶이 1950년대 후반에도 가능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어느 정도 깨인 사람이었다. “저 녀석은 사람 되긴 영 틀렸다며 갑순을 놓아 주었다. 이혼한 여자는 세상이 얕본다고, 첩한테 조강지처 자리는 내주는 게 아니라며 법적 이혼을 허락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자립할 수 있도록 간호학교에 보내 준 것도 시아버지였다. 그녀는 수습 간호사를 거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파독 간호사를 자청, 우리나라 정부에서 간호사를 독일로 보낸 마지막 해, 독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세 살이었다.
 
- 특별기가 비가 퍼붓는 김포공항을 이륙하는 순간, 간호사 128명은 일제히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처음 타 보는 비행기 여행의 설렘이나 로렐라이가 노래한다는 먼 나라에 대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알래스카를 거쳐 스무 시간 넘게 비행하는 내내 울던 아가씨는 여덟이나 되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책임져야 했던 영자였습니다. 간호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옥순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자식 셋을 친척 집에 떼어 놓고 비행기를 타야 했지요. 내 옆에 앉았던 점례는 부모님이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그들을 견디게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고생하면 가족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나는 다만 나를 위해 떠났습니다. 그것이 운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보람을 찾는다면 의무 계약 기간 3, 급여의 일부는 반드시 한국으로 송금해야 하고 적금을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므로 시아버님이 보관했다가 돌려주기로 한 통장, 그뿐이었습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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