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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35] 우주의 한 점에서 울려 퍼진 풍경소리
지금, 우리는 함께 이곳에 있다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2 06:30:10
 
 
나는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문에 달아 둔 작은 풍경이 흔들렸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어린이용 동화책들이 시시해질 무렵, 나는 터미널 근처 서점을 드나들었다. 주인아저씨는 내가 서가 사이에 숨어 책을 훔쳐보는 걸 알고 처음엔 내쫓았지만 나중엔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
 
침 묻히지 말고 깨끗하게 봐야 한다.”
 
어머니가 죽고 난 뒤부터였다. 내가 주인아저씨가 다니는 교회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도 유효했다. 그때부터 서점은 내 유일한 놀이터였다.
 
어서 오너라.”
 
아저씨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말없이 들어간 나를 대신해서 아이가 명랑하게 인사했다. 매대 앞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흘끔 아이를 쳐다보았다.
 
친구랑 같이 왔구나.”
 
아저씨가 인사했지만 나는 부리나케 아무도 없는 구석의 책장들 사이로 숨어 버렸다. 아무 책이나 빼 들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이는 다람쥐처럼 따라와서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을 열어 연필과 공책을 꺼냈다.
 
크리스마스 때 나, 마리아 한다.’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공책의 빈 페이지에 쓴 글씨를 내보였다. 서점이니까 도서관에서처럼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린이 성경반에서 크리스마스 때 올릴 연극의 배역을 맡은 모양이었다.
 
부처님오신 날엔 마야 했어.’
 
마리아의 글씨가 다시 동글동글 웃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인데 마야는 부처님의 어머니였던가? 나는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 손에 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고 깊은 우주에 찍힌 작고 하얀 점이 지구라고 했다. 사진 아래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 보러 올 거지?’
 
마리아는 다시 공책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내 얼굴을 뚫어 버릴 기세로 쳐다보며 오래도록 사탕을 빨았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아이의 연필을 집어 들어 공책에 글씨를 썼다.
 
거긴 왜 왔어?’
 
어디? 하는 눈으로 아이가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아하,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와 나는 하나의 연필을 주고받으며 묻고 답했다.
 
죽었으니까.’
 
누가?’
 
누군가는 언제나 죽지.’
 
언제나 죽는데 왜 갔어?’
 
재미있잖아.’
 
뭐가?’
 
장례식.’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마리아가 다시 한참을 썼다. 나는 기다렸다.
 
검은 옷을 입고 울고 위로하고, 꼭 연극 같잖아.”
 
마리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이상한 아이였다.
 
너는?’
 
아이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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