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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34] 파렴치하지만 황홀한 욕망
당신은 얼마나 특별한 남자인지!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1 06:30:19
 
 
나는 정하운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육체적으로 매혹당한 건 분명했지만 여자에게 끌리는 마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낯선 유혹의 감정이 죽음 앞에서 파렴치해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죽음이 덮친다면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죽음을 전제로 도박을 걸어야 한다면 더 황홀하고 더 불가능한 꿈을 목표로 뛰어드는 것이 용기와 모험심을 자극할 수 있을 터였다. 정하운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서둘지 않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그녀가 가까이 마주 섰다.
 
강무훤 씨는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남자인지 모르고 있군요.”
 
그녀의 미소가, 검은 두 눈동자가 내 눈앞에서 반짝 빛났다. 진심이든 의도적이든 그녀는 당돌하게 나를 유혹했다. 나의 도발에 흥미를 느낀 것도 같았다.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고 싶었다. 그녀의 허리를 조여 안고 반쯤 열린 침실로 데려가 눕히고 싶었다. 목덜미에 코를 묻고 여자의 체취를 남김없이 마시고 싶었다.
 
왜 이 방엔 그녀와 나뿐인가. 왜 욕망으로 날뛰는 야수를 비웃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유혹이 어떤 사악한 세계의 함정이라 해도 제어하기 힘든 열망이었다. 육체의 중심이 단단하게 일어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육체가 미친 듯 그녀를 원한다 해도, 그녀가 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해도 내 이성과 자존심이 그래선 안 된다고 고함쳤다.
 
정하운이란 여자에게 도전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흉측한 몰골과 곤두선 욕망의 자각이 나를 짐승으로 느껴지게 했다. 나는 가까스로 내면의 괴수를 우리에 몰아넣고 그녀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두 주먹을 힘껏 쥐었다. 그녀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순간, 정하운이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들어 올린 손이 내 눈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주저함 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해적 안대를 벗겼다. 그러고는 내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내 눈에 돋은 험악한 가시들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친밀한 동질감이었다. 내게 전해진 뜻밖의 공감은 정하운을 성적 대상으로만 치부하려 했던 천박한 나의 욕망을 대책 없이 무너뜨렸다.
 
슬프니?’
 
그 아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또렷이 들려 왔다. 정하운의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짝이 바뀌었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아이는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마다 나는 눈길을 돌렸다. 하루는 교실 청소가 끝나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빨간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던 아이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나는 그 아이의 붉은 혓바닥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홱 돌렸다.
 
, 너희 아버지 교회에 다닌다.”
 
아이가 말했다. 점점 빨라지는 내 걸음 속도와 보조를 맞추느라 아이는 이따금 깡총, 뛰어야 했다.
 
너 보러 간 건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가려던 방향을 바꿔 걸음을 재촉했다. 아이도 지지 않으려는 듯 입을 닫고 빠르게 걸었다. 11월 끝의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 몸에서는 열이 났고 등줄기엔 땀이 흘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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