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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순례의 왕 성 루이와 로카마두르
기적의 종 울린 검은 성모 마리아로 유명한 곳
예루살렘·로마·산티아고와 함께 세계 4대 성지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24 06:30:40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시계를 726년 전으로 되돌려 본다. 1297811일, 이날 프랑스의 루이 9세 왕의 시성식이 있었다. 그는 세속인 중 최초의 성인(聖人)으로 추대됐다. 루이 9세 왕이 성 루이(Saint Louis) 왕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역사를 새로 쓴 이 왕은 1214425일 프랑스 북부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필리프 오귀스트가 부빈(Bouvines) 전투를 총지휘할 때였다. 필리프는 이 전투에서 영국 왕이자 아키텐 공작인 장 상 테르(Jean Sans Terre)가 이끄는 연합군을 통쾌히 무찔러 프랑스의 왕위를 부여받았다. 부빈의 승리는 훗날 손자 루이가 앙주(Anjou)·메인(Maine)·투레인(Touraine)·푸아투(Poitou)로 프랑스 영토를 확장시키는 길을 열었다.
 
이 행운의 성 루이는 12살 어린 나이에 무거운 왕관을 썼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먹고 자라 죄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 그의 어머니 블랑슈 드 카스티야(Blanche de Castille)는 타협을 모르는 기질의 스페인 여인으로 아들을 위선적인 왕·어깨에 보닛을 두른 불쌍한 신봉자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로 키웠다. 그래서일까. 루이는 보통 왕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을 싫어했다. 대신 쾌활한 성격을 지녔고 젊은 아내 프로방스(Marguerite de Provence)의 애정으로 죽음을 향한 물질적·도덕적 준비를 철저히 하여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데 평생을 바쳤다. 매일 가난한 사람들을 식탁에 초대해 선물을 주고, 성 목요일에는 흙으로 검게 그을린 농노들의 발을 씻겨 주었다. 맹인들을 조심스럽게 치료해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했다. 루아요몽(Royaumont) 수도원에서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는 나병 환자들에게 음식을 나눠 줬다. 그는 방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수많은 피정을 했다. “주님께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왜 이 세상에서 쾌락을 추구합니까?”라는 게 그의 질문이었다.
 
▲ 로카마두르 전경. 3층의 마을이 오늘도 건재하다. 위키피디아
 
기독교적인 왕을 자처한 루이 9세는 베젤레이·샤르트르·아라스·르 푸이 앙 벨레이·몽생미셸 등 수많은 성지를 방문했다. 마리아 숭배자인 그는 국가의 안녕을 빌고 성모를 경배하기 위해 로카마두르(Rocamadour)로 순례를 떠났다. 이곳은 11세기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한 순례지였다. 교황 파스칼 2세는 1105로카마두르의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순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순례의 명성은 이미 우리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로카마두르는 예루살렘·로마·성 야고보 드 콤포스텔라와 함께 기독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입니다.”
 
로카마두르는 1166년 성모 예배당 아래에서 예수와 가까웠던 아마두르의 시신이 발견된 후 마리아의 순례지가 됐다. 1170년에는 잉글랜드 왕이 카스티야 왕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찾았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유럽 각지의 순례자들이 검은 성모상 앞에서 속죄의 기도를 드리던 중이었다.
 
성 루이 왕은 순례의 명소인 이곳을 1244년 봄에 찾았다. 참회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순례 여행은 왕복 약 8. 서른 살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직후였다. 왕비는 해산을 한 지 2개월밖에 안 되어 동행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데려갔다. 왕의 가족은 로카마두르의 검은 성모상 앞에서 프랑스의 안녕을 빌었다. 이때부터 성지 순례는 프랑스 국가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로카마두르의 검은 성모 마리아. 위키피디아
 
세계 4대 성지의 하나인 로카마두르. 옥시탄 지방 알주(Alzou) 계곡 위로 150m의 절벽에 매달려 있는 오-케르시의 진주다. 이 마을은 3층으로 구성돼 있다. 중세 시대의 신분제도를 반영해 맨 위층에는 기사, 중간에는 종교 성직자, 맨 아랫부분의 강가에는 평신도 노동자가 살아 세 가지 계층의 사회 질서가 반영된 모습이었다.
 
이 마을은 11세기부터 왕족뿐만 아니라 평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영국의  헨리 2·시몽 드 몽포르·성 루이 왕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루이 11·성 도미니크·성 베르나르·성 앙투안 드 파도바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모든 왕들, 그리고 최근에는 에드몽 미셸과 프란시스 폴렌크 등이 검은 성모상과 성 아마두르의 무덤을 찾아 숭배했다.
 
'신앙의 성채'로 불리는 로카마두르는 그라마트의 하얀 고원으로도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골목이 있는 이 중세 도시에는 살몬·카빌리에르·드 로피탈·뒤 피기에 문이라는 일련의 요새화된 문들이 떡 버티고 있다. 순례자들이 무릎을 꿇고 오르곤 했던 기념비적인 계단이 있는 성 소베르(Saint-Sauveur) 대성당은 세계인류문화유산인 성 아마두르 지하 예배당, 그리고 성 블레즈·성 장 바티스트·검은 성모상이 있는 노트르담 소성당으로 이어지고 십자가 길은 전망대가 있는 성곽과 예루살렘 십자가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곳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검은 성모 마리아다. 바다에서 선원들의 구조를 알리는 기적의 종을 울린 검은 마리아. 이를 찾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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