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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인(人)스토리] “이사는 주주 대리인… ‘거수기’ 된 관행 바꿀 것”
지배주주 사욕 채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돼야 증시 건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저지 운동… 자산운용사 결속 전기 마련
상법 개정안 등 8개 입법과제 총선 어젠다로 채택되도록 노력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30 00:04:00
▲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2015년 말 투자업계에 본격 입문해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이사는 주주의 대리인으로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게 활동해야 하고 경영진과 회사의 위법 행위로부터 주주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이사회는 지금까지 창업주 가문의 이익을 도모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죠.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입법화해서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를 막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고 싶어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 증시의 고질병이다. 글로벌시장에서 삼성전자·현대차 등 우리 기업들이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주가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전기차 등 유망한 산업에 투자하고 있음에도 주가는 ‘반짝’ 오를 뿐 얼마 못 가서 주저앉고 만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꼽히는 대한민국이 왜 증시에서는 작아질까. 무엇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걸까. 김규식(55)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거버넌스)가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경영진·이사 등이 주주 전체가 아닌 지배주주만을 위해 활동하며 그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걸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사무실을 찾아 김규식 회장을 만났다.
 
투자업 입문 후 거버넌스 문제 직면
 
변호사인 김 회장은 2011년 자본시장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투자 금융 분야 법률 자문을 할 때였다. 주식 투자를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법률 및 거버넌스 이슈를 분석해 자산운용사가 투자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업무를 수행했다. 업무가 의외로 잘 맞았다. 법률 자문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예측이 적중되는 데에 재미를 느낀 것이다.
 
“2012년 8월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금요일 장을 마치고 공시했는데 난리가 났죠. 월요일에 장이 개시되면 주가가 폭락할 게 뻔해서였어요. 패소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삼성전자가 항소할지, 2심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 등을 일요일 저녁까지 분석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주말 동안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보고했죠법률 고문으로 이렇게 일하다가 업계 권유로 2015년 변호사를 그만두고 자산운용사로 완전히 이직했어요.”
 
투자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후 법률 자문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다.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는 지배주주의 사적 행위로 주가가 폭락했을 때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가 없었다. 법적 관점에서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는 김 회장이 거버넌스 개혁 운동을 전개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로 다가왔다. 2018년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고자 현대모비스의 A/S 부문을 현대글로비스로 매각하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현대모비스의 A/S 부문 밸류에이션을 실제 공정가치보다 4분의 1 낮게 책정했다는 점이다. 헐값 매각 소식에 현대모비스·현대차 주가는 30%가량 폭락했다.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주주들은 피해를 입었다.
 
“주변 자산운용사 대표들을 모아서 현대모비스의 A/S부문 밸류에이션은 말이 안 되는 가격이라서 그냥 받아들이면 나라 망할 거라고 설명했어요. 국민연금도 비공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의견을 표명했죠. 다행히 현대모비스는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매각 건을 철회했어요. 주주들이 힘을 합쳐 지배주주를 상대로 승리한 일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때를 계기로 뭉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때마침 자산운용사 대표님들이 저한테 포럼을 만드는 게 어떠냐고 했죠. 처음엔 거절했는데 거버넌스를 법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투자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해서 안 만들고 버틸 수 없었어요. 뜻있는 자산운용사 대표님과 변호사·교수님과 같이 2019년 12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을 설립했죠.”
 
▲ 김규식 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배경과 관련해 후진적인 기업 거버넌스를 지적했다. 경영진·이사 등이 주주 전체가 아닌 지배주주만을 위해 활동하며 그들의 사적 이익 추구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이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거버넌스 개혁을 도모하는 조직이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열망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국민들이 증권을 통해 자산을 축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부동산 쏠림·극단적 가계부채·노년 빈곤·국민연금 재정 고갈 등의 사회적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사려면 빚을 껴야 하잖아요. 경제상황이 나빠지거나 금융위기가 터지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손실을 입을 수 있죠. 가계부채가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엔 자산 구조가 붕괴될 수 있어요. 증권이야말로 빚 없이 장기적으로 연 8~10% 수익률을 얻는 수단이에요. 우량기업에 투자해 주가가 오르고 배당금을 받으면서 자산을 불려 나갈 수 있죠. 그러나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그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비롯된 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죠.”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가? 김 회장은 자본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자본의 원리를 파괴한 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공정하고 원활하게 거래되려면 자본의 원리가 작동해야 돼요. 위험과 보상이 비례한다는 것이 자본의 원리죠. 하이리스크(고위험)를 부담한 사람은 실패 시 손실이 크지만 성공하면 하이리턴(고수익)을 얻는다는 거예요. 반면 로우리스크를 부담하면 성공해도 로우리턴이죠. 냉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게 시장경제 원리이고 이것보다 나은 원리는 아직 없어요. 두 번째로는 자본의 원리를 파괴하는 자에 대해 법·제도적으로 책임을 묻고 응징할 수 있어야 돼요.”
 
“둘 중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자본시장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어요.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가 없는 상황에선 누군가가 위험·보상 비례 원리를 잠탈해서 사리사욕을 도모할 수 있거든요. 위험은 남에게 전가하고 이익은 자기가 챙긴다는 얘기죠. 이러한 세력을 응징하지 못하면 투기하려고 하고 남 뒤통수치고 서로 불신하면서 자본시장이 왜곡될 수 있어요.”
 
“주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가 미비하다는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큰 원인이에요. 예를 들어 LG화학 주주들은 2010년대 초부터 배터리 적자에도 계속 투자했죠. 당시는 전기차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부담한 것이죠. 이후 배터리 사업이 성공했을 때 LG화학은 어떻게 했나요? 주주들에게 보상은커녕 배터리 부문을 빼 가지고 상장했잖아요. 위험만 부담시키고 보상은 빼먹었죠. 지배주주만 웃었죠. 이런 게 우리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공매도 문제, 취약한 거버넌스와 직결”
 
그렇다면 주주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김 회장은 이사의 역할에 주목했다. 현행 상법 382조 3항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여기에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자는 주장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이기도 하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이사에게 주주 이익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포럼은 상법 개정안을 포함해 8가지 입법 과제 캠페인을 펼치는 중이다.
 
“선진국에서는 이사가 지배주주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가는 파산당할 수 있어요. 영국 법·제도를 따르는 싱가포르의 현지 변호사·펀드매니저들과 얘기해 봤는데 그들은 우리나라의 모자(母子) 동시상장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모회사가 자금을 조달해 자회사에 주면 되는데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자회사를 따로 상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었죠.”
 
▲ 김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이끌고 있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거버넌스 개혁을 도모하는 조직이다. 김 회장 등 포럼 회원들이 지난해 7월 주주보호 방안에 관한 기자회견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주들이 이사회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소송은 두 가지다. 회사에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주주대표소송이 첫 번째이고 다른 하나는 주가 폭락으로 회사뿐 아니라 주주도 손해를 봤으니 주주에게도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주주직접소송이다. 한국은 영·미권 국가와 달리 주주대표소송만 가능하다. 주주직접소송은 할 수 없다. 결국 이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셈이다.
 
“예를 들어 지배주주이자 이사인 사람이 나쁜 짓을 해서 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수천 억 원을 배상한다고 해도 여전히 지배주주죠. 쉽게 얘기해 내 주머니에서 회사 주머니로 간 것이고 나중에 내 주머니로 돌아갈 수 있어요. 주주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라면 다르죠. 손해배상금이 지배주주 주머니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심하면 파산할 수도 있죠. 이러한 법·제도가 있다면 이사들이 사적 이익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는 이사의 배임 행위에 대해 전문적으로 소송하는 로펌들도 많이 있죠.”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사는 회사를 보호할 의무만 있고 주주에 대해서는 보호할 필요 없다’는 태도예요. 양심적인 기업인들은 안 그렇겠지만 부도덕적인 기업인들은 회사 자산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죠. 분명한 것은 이사는 주주의 대리인이란 거예요. 회사의 위법 행위로부터 주주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법제화하자는 게 캠페인 취지죠. 이를 통해 이사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주주들이 지적하고 소송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켰으면 해요.”
 
공매도 문제도 거버넌스와 뗄 수 없는 문제라고 봤다. 무차입 공매도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만 공매도 소식에 주가가 쉽게 휘청거리는 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도 배당금을 적게 책정하거나 경영진·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점이 ‘공매도 공포심’을 키웠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공매도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공매도가 잘 먹히는 것은 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이에요. 우량기업을 포함해 국내 기업들 대부분이 배당을 안 한다는 얘기죠.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배당을 안 하기 때문에 주주들 모두 공매도 세력이 악재를 때리기 전에 주식을 팔고 나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기장이 되고 있는 것이죠.”
 
“배당을 많이 하면 어떨까요? 미국 상장사처럼 배당성향이 90%가량이라면 공매도 세력이 들어와도 무시할 수 있어요.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있으면 보유하고 있어도 배당금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주가와 배당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예요. 주가가 내리면 배당률은 올라가죠. 주주들은 주가가 하락해도 배당률을 보면서 버틸 수 있죠. 이게 마지노선이에요.”
 
“불법 무차입 공매도는 차단해야 하지만 동일한 조건으로 공매도를 하게 해 달라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상 말이 안 돼요. 동일한 조건으로 공매도를 한다고 해도 개인은 돈을 절대 벌 수 없죠. 우량자산에 대해 배당 투자하면서 자산을 꾸준히 불려가는 게 좋아요. 배당을 늘릴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게 공매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김 회장은 상법 개정안 등 8가지 입법과제들이 내년 국회의원선거에서 여야 정책 어젠다로 부상할 수 있도록 이를 알리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했다.
 
“8가지 입법 과제가 내년 총선에서 화두로 올라설 수 있도록 양당에 지속적으로 말씀드리고 있고요. 한 분이라도 더 선거에서 이 어젠다를 채택할 수 있도록 조언할 생각이에요. 이번 정부는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후순위로 밀려 있지만 대통령께서 공약하신 입법 개혁과제들이 관철되도록 총력전을 펼칠 계획이에요. 내년 총선이 중요한 계기일 것 같고요. 내년에 더 강하게 입법 개혁 운동을 추진할 생각이에요.” 
 
김규식 회장 프로필
△1968년 2월26일생
△서울대 법대 졸업·사법연수원 36기 
 
△StarSeed Asset Management Pte Ltd CEO·CIO
△Wilt Capital Management Pte Ltd Director
△KSA Law Office Managing Partner·Attorney at Law
△수림자산운용 전무이사 및 리서치본부장
△금융감독원 법률고문
△한국자산관리공사 리스크심사위원
△현)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현)Ternary Fund Management Company Portfolio Man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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