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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BBC 혁신과 파격 필요한 KBS의 과제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21 06:31:20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지난주 박민 사장이 취임하면서 KBS는 본격적인 혁신 모드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다소 성급했다는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취임과 함께 대대적인 인사 조치를 하고 지탄받아 왔던 일부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은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취임 즉시 대국민 사과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약속한 것은 그만큼 KBS가 처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송과 거의 인연이 없었던 신문사 출신의 문외한이라는 내·외부 우려에도 외부 인사가 공영방송 수장이 된 것은 이례적이고 어찌 보면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은 KBS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방만 경영 같은 고질적 문제들을 이제 더 이상 KBS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재 KBS와 MBC 같은 공영방송의 몰락은 정치권력과 특정 정치성향을 지닌 노조 세력이 연대해 만든 후견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권력은 노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영방송을 통제하고, 대신 노조는 정권으로부터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보장받아 온 것이다. 정치적 불공정성과 방만한 경영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최근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이라는 목적으로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방송3법 개정도 이 같은 후견 체제를 영구히 지속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영국 BBC의 구조 변화는 나름 시사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2017년 영국 정부는 2007년부터 10여 년간 존립해 왔던 ‘BBC 트러스트’를 폐지하고 BBC 이사회(Board of Governors)를 부활시켰다. BBC 트러스트는 경영과 감독 기능을 함께 보유한 BBC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내적 통제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BBC 트러스트는 시청자를 대신해 BBC 채널들에 대한 ‘공적 책임 평가’와 서비스 면허 승인·수신료 분배 권한 같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BBC 트러스트가 폐지되면서 BBC에 대한 감독·규제 기능은 규제 기구인 오프콤(Ofcom)으로 이관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디지털 매체들이 급성장하면서 BBC 역시 전체 매체 환경 차원에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BBC의 자율규제 시스템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실제로 오프콤은 오랫동안 BBC 방송 내용 규제를 두고 BBC 트러스트와 적지 않은 갈등을 빚어 왔다. BBC 수신료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오프콤의 결정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념적으로 BBC는 초대 국장인 리스(John W. C. Leith) 경이 주창한 청교도적 가부장주의(paternalism)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 BBC는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종의 ‘자기완성체’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들이 급성장하면서 공공방송 독점체제가 붕괴되어 이제 공영방송은 존립 근거부터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보장해 주는 제도와 재원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되었다.
 
BBC나 KBS 모두 자기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하고 경영합리화도 이뤄야만 한다. 실제로 2018년 영국 BBC는 백서를 통해 “이제 BBC의 경쟁자는 넷플릭스나 구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경쟁력 강화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 그 전략이 지금까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실종된 자정능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만은 분명하다.
 
KBS는 오랜 기간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위치해 오면서 공영방송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황폐해져 버렸다. 신임 사장과 집행부는 아마 1년 남짓 되는 임기 중에 지난 정권 시절 구축된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고 인적 청산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 또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구성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당장 눈앞에 놓인 적폐들을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시적으로 공영방송 KBS를 어떤 방향으로 재설계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KBS는 이미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정도의 구조조정으로는 회생 불가능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공영방송 구도, 아니 전체 방송 구조를 새롭게 짜는 재개발 수준의 재구조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과 정부 모두 이를 위해 KBS 구성원들에 의한 자구 노력이 아닌 파격적인 개혁 조치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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