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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 디지털 마약 ‘숏폼’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21 00:02:30
 
▲ 임유이 문화부장 대우
1825년 처음 등장한 증기기관차의 속도는 시속 20km였다. 지금 경부선 고속철도가 시속 300km로 달리는 것을 감안하면 달린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느린 속도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인간이 지치지 않고 1시간에 20km를 이동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기차역에 마중 나온 친구가 이런 인사를 건넸을 법하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왔네?”
 
15초에서 1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숏폼(short form)이 인기다. 말 그대로 눈깜짝할 사이에 방송이 끝나 버린다. 1분 이내에 기승전결을 완성해야 하므로 숏폼에는 핵심 중의 핵심 내용만 담기게 된다
 
숏폼에는 거두절미의 미학이 담겨 있다. 진나라 재상 이사가 한비자의 법치주의 논리를 설명하려 하자 시황제가 머리와 꼬리를 잘라 버리고 요지만 이야기하라고 한 데서 거두절미라는 말이 유래했다. 그 오래전에도 잔사설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숏폼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는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가 있다10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숏폼 이용층이 전 연령대로 확대된 것은 가성비에 대한 욕망이 남녀노소·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숏폼의 장점은 길이가 짧다는 것이다. 1분도 허투루 쓰기 싫어하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장르는 없다. 지극히 짧아서 무엇에 쓰기도 애매한 1분이라는 시간, 숏폼을 열면 눈과 귀가 즐거울 뿐 아니라 생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각 영상물은 간혹 연결성을 갖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독립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접근해도 이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스토리라인을 가진 영상물은 물론 마케팅·음악·쇼핑 분야에까지 숏폼이 활용되는 중이다.
 
그런데 숏폼의 이런 장점이 곧 단점이 되기도 한다. 쉽게 접근했다가 헤어나오지를 못해 1시간 넘겨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 시밀러웹의 숏폼 이용 시간 분석 결과(20216~ 20226)에 따르면 틱톡의 1일 평균 이용 시간은 1시간 27분이었다. 유튜브 쇼츠1시간 21, 인스타그램 릴스41분이었다.
 
숏폼은 유저가 콘텐츠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영상이 스트리밍된다. 유저가 좋아할 만한 것을 알고리즘이 파악하여 알아서 내보내는 식이다. 채널을 돌리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보여 주니 안 빠져들 재간이 없다. 숏폼 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숏폼을 디지털 마약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숏폼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유혹이 따라붙었다. 낭만의 시대에는 댄스홀에서 춤으로 밤을 지새우는 남녀가 있었고, 정치적으로 엄혹한 시절에는 등사실에서 밤을 새우던 운동권 청년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삶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로 밤을 지새웠고, 누군가는 지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독서로 밤을 지새웠.
 
지금은 숏폼이 그걸 대신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곳에 접근할 수 있다.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현대인은 점멸하는 스마트폰의 푸른빛 속에서 고독을 잊는다.
 
숏폼이 곧 댄스홀이고 등사실이고 술상 앞이고 책상 앞인 것이다. 친구도 되어 주고 가족도 되어 주니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획기적인 뭔가가 나타나지 않는 한 숏폼은 당분간 이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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