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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216] 관산성 전투 ③
제가 성공하면 저를 이 나라 제일의 궁수로 인정해 주십시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27 06:30:10
 
 
이대로 돌아가면 의심을 살 것입니다. 제 어깨에 화살을 쏴 주십시오.”
무력은 청에 따라 어깨에 화살을 박았다. 맹복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삼년산성을 향해 내달렸다.
한편 삼년산성의 수문장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맹복이 돌아오지 않자 의심이 들었다. 수문장은 도도를 불러 추궁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혹시 그자를 내보내기 위해 핑계를 댄 거요?”
내 목숨이 위태로울 걸 뻔히 알면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가 있겠소. 아무래도 무슨 사고가 생긴 듯하오.”
도도는 짐짓 걱정하는 척 말했다.
수문장은 군사들에게 성 밖으로 나가서 주위를 살피게 했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수색 나갔던 군사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마부가 달아났다고 확신한 수문장은 도도를 감금하라 명했다.
도도가 군사들에게 끌려가고 있을 때 파수를 보던 군사가 외쳤다.
멀리서 말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나가서 말을 끌고 들어왔다. 오른쪽 어깨에 화살이 박힌 맹복이 말 등에 엎어져 있었다.
이를 본 도도가 황급히 달려가서 대장장이를 끌어내리며 군사들에게 외쳤다.
처소로 옮기는 것을 도와주게. 이리 두었다가는 목숨이 위태하겠구나.”
도도가 의술에도 조예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예전에도 종종 아픈 군사를 치료한 적이 있었다.
도도는 군사들의 도움을 받아 정신을 잃은 맹복을 처소로 데려갔다. 수문장은 수하 군사 한 명을 도도에게 붙여 돕게 했다.
치료를 마친 도도는 시중을 들던 군사를 돌아봤다.
이제 급한 조치는 끝났으니 안정을 취하면 되네. 자네는 나가서 일 보게나.”
군사는 군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도도는 조용히 맹복에게 물었다.
어찌 돌아온 건가? 장군께서 나에게 전하라는 말씀이 있나?”
의식을 잃은 척하고 있던 맹복은 그제야 눈을 뜨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장군께서 백제 왕을 암살하라 명하셨네. 신라군이 관산성을 치면 백제 왕이 이곳으로 돌아올 거라 하셨네. 그때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의 목숨을 끊으라고 말씀하셨네.”
각오하고 있던 일이지만 막상 자신의 손으로 성왕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
자네는 당분간 몸조리나 하게.”
도도는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미 밤이 깊어 별들이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저 별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별이 자신의 자리를 떠날 수 없듯이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침내 무력은 신주의 정예병을 이끌고 관산성을 들이쳤다. 한바탕 피가 튀고 살이 날아가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부여창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신라의 공격을 막아 냈다. 적의 화살이 날아오는 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수하들을 지휘했다. 태자의 용감한 모습을 본 백제 군사들은 더욱 힘을 내서 신라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신라군이 며칠 동안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관산성은 흔들리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무모하게 공격하다가는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무력은 일단 군사를 물리고 관산성을 공략할 방법을 모색했다.
성안에 있는 부여창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성에 지원을 요청한 지도 오래됐는데 구원군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양쪽 모두 뾰족한 방책을 찾지 못했기에 당분간 대치 국면이 계속됐다.
한편, 성왕은 국원성에 이르러서야 신라군이 관산성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신라군이 관산성을 함락시킨다면 그가 이끄는 군대는 퇴로가 끊기게 될 것이었다. 이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관산성에 있는 군사만으로는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노련하고 지략이 뛰어난 무력에 비해서 부여창은 혈기만 앞서는 풋내기일 뿐이었다. 성왕은 무엇보다 태자가 걱정되어 속이 타들어 갔다.
백제군 입장에서는 국원성 공략보다 관산성을 구원하는 일이 더 급했다. 자칫하면 신라군의 배후를 공격하려다가 오히려 포위당하게 될 형국이었다.
성왕은 기병 5천을 이끌고 먼저 관산성으로 떠났다. 나머지 군사들은 병관좌평 연회의 인솔 아래 후방을 경계하며 후퇴하기로 했다.
백제 왕은 밤새 쉬지 않고 달려 삼년산성에 당도했다. 이곳에서 군사를 쉬게 하면서 신라군의 형세를 살필 생각이었다.
삼년산성을 지키고 있던 장군 사종(沙種)이 성문을 열고 영접했다.
성왕이 한숨을 몰아쉬며 묻는다.
관산성의 전황은 어떠하냐?”
지금은 잠시 전투를 멈추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공성전으로 아군이 큰 피해를 보았지만 신라군이 받은 타격도 상당히 큽니다. 이 틈을 노려 그들을 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성왕은 장수들을 둘러보며 명했다.
오늘은 이곳에 머물며 군사와 말을 쉬게 하라. 내일 아침이 밝으면 관산성으로 출발하겠다.”
장수들이 나가서 수하 군사들에게 왕명을 전했다.
처소에 든 성왕은 시위에게 명해 도도를 데려오라 했다. 잠시 후 도도가 굳은 얼굴로 시위를 따라 들어왔다.
성왕은 반갑게 맞이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네가 우리 백제군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귀부하기로 결심을 굳힌 듯하구나.”
도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 소인을 높게 평가해 주시니 귀부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성왕으로서는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던 마구간지기의 태도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래, 그 청이 무엇이냐?”
좌우를 물려 주소서.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왕은 도도가 이처럼 조심스럽게 하려는 얘기가 무언지 궁금했다. 그래서 좌우에 도열해 있는 시위들을 물렸다.
단둘이 남게 되자 도도는 성왕에게 정성껏 절을 올렸다.
폐하께서 저에게 보여 주신 믿음과 배려는 태산과 같습니다. 소인이 죽어서 백골이 진토(塵土)가 될 때까지 갚는다 해도 다 갚지 못할 겁니다.”
여기까지 말을 한 도도는 재빨리 품에서 칼을 뽑아 들고 백제 왕에게 달려들었다. 성왕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성왕의 비명을 듣고 방으로 뛰어든 시위들은 도도가 왕의 등에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임금이 다칠까 두려워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도도가 성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소인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도도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왕의 등에 칼을 깊숙이 꽂았다. 기겁한 시위들이 일제히 도도에게 달려들어 그를 난자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대국 백제의 임금이 한갓 마구간지기의 손에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것이었다.
 
백제의 성왕이 삼년산성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관산성에 전해졌다. 부여창은 부왕의 부음을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한동안 정신을 놓고 울던 태자의 마음속에서 신라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솟구쳤다.
내 반드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
성왕의 죽음은 백제군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태자가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국왕의 변고가 알려지면서 관산성 군사들의 사기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꺾였다.
신라군은 세 방향으로 군사를 나누어 일제히 관산성을 공격했다. 성벽 위의 백제 군사들은 조금씩 밀렸다. 부여창은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악전고투했지만 개미 떼처럼 성벽을 타고 오르는 신라 군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신라군이 북쪽 성벽을 새까맣게 점령했다. 백제 태자는 할 수 없이 성을 포기하고 서쪽 문으로 향했다. 이를 본 신라 군사들이 달아나는 부여창을 포위했다. 백제 군사들은 부여창을 보호하는 한편 포위망을 뚫으려 애썼다. 하지만 신라군의 숫자가 너무 많아 여의치 않았다.
이때 한 군졸이 나서며 태자에게 말했다.
제가 적장을 쏘아 저들의 기세를 꺾을 테니 그 틈을 타서 빠져나가십시오.”
그는 작은 키에 보잘 것 없는 체격이었다. 강궁(强弓)을 들고 있는 것만도 버거워 보였다.
너의 재주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태자는 군졸의 외양만 보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군졸은 물러서지 않았다.
만일 제가 단 한 발로 적장을 맞추지 못한다면 저의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성공하면 모든 군사 앞에서 저를 이 나라 제일의 궁수로 인정해 주십시오.”
백척간두에 서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이 태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좋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국조(國造)라 합니다.”
그래, 실력을 보자꾸나.”
이때 바위처럼 단단하고 우람한 체격의 신라 장수가 좌충우돌하며 백제 군사들을 베고 있었다. 부여창은 그를 가리키며 일렀다.
저자를 쓰러뜨려라.”
국조는 활시위를 귓불까지 당겼다. 활이 부러질 듯 팽팽하게 휘었지만 궁수의 팔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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