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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민간 공작조’ 5·18 개입 결정적 증거로 부상
[단독: 5·18 진실 찾기] <22> ‘광주 침투’ 임무… 딱 걸린 간첩 이창룡
李, 5월21일 軍에 막혀 광주 진입 실패… 서울에서 잡혀
당시 美대사 “공산주의자들이 배후 세력” 워싱턴에 보고
노무현·문재인정부 조사위에선 “신군부 조작” 진실 덮기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08 00:05:00
▲ 암호문·난수표·공작금 등 노획품과 함께 있는 이창룡 씨. 이씨는 체포당시 혀를 깨물어 솜뭉치를 입에 물고 있다. 동아일보 사진 캡처
 
1980년 5·18 때 생포된 남파 간첩 이창룡(李昌龍·본명 홍종수·당시 46세)은 광주 침투 임무를 띠고 잠입했다가 검거됐다고 당시 주한미국대사가 워싱턴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무현정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의 2007년 보고서와 문재인정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 6차 중간보고서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들 조사위 보고서는 “이창룡(문서에 따라 이창용 혼용)은 광주와 무관한 데도 신군부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진상규명위원장인 이해동 목사는 2019년 김진태 당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과 지만원 박사가 5·18 망언을 했다며 국회 제명과 엄정 대응을 촉구한 인물이다. 
 
송선태 위원장은 무기고 탈취와 전남도청 점령을 기획한 이른바 ‘자유노트’ 작성자이자 무장봉기 주동자로 드러나 공정한 조사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난과 함께 위원장 제척 대상으로 거론됐다. <본지 8월2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⑧] 5·18진상조사위원장은 ‘무장봉기’ 모의 주동자 보도 참조> 
 
송 위원장의 5·18조사위가 올해 6월30일 발표한 6차 보고서 244쪽은 “1980년 5월24일 간첩 이창용을 ‘광주 시위선동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던 사건은 5·18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국방부 조사위 발표보다 분량이 더 짧아졌고 추가 수록된 정보는 보고서에 없다. 
 
올해 12월26일 4년간의 활동을 접는 만큼 보강된 정보 또는 새롭게 드러난 사실 없이 기존 내용대로 내년 최종 보고서에 수록될 것으로 5·18 연구가들은 예상한다. 
 
2007년 보고서는 “5월16일 전남 보성을 통해 침투한 이창용의 수사 기록이나 재판 기록에선 5·18과 관련한 임무나 광주로 잠입하기 위한 시도는 발견할 수 없었다”며 “신군부 세력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과 연관된 것처럼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두 조사위는 비슷한 시기에 스파이 활동을 하다 체포된 남파간첩 손성모와 마찬가지로 이창룡 역시 광주와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손성모는 1988년 4월 첫 공개 재판에서 “김일성 주석님의 조국 통일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고 자신의 남파 경위를 직접 밝힌 바 있다. 
 
공판조서에 “조국 통일 노선 실현”이라는 손성모의 자백이 기록됐는데도 광주와는 무관하다는 해석은 “5월27일 남침을 기도한 북한이 최전방에 무력을 배치했지만 실제 남침하지 않았으니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주장하는 측의 아전인수식 미 국무부 문건 해석과도 흡사한 양상을 띤다. 김일성은 박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대남적화를 위한 다수의 교시와 지령을 내렸다. 
 
이후 비전향 장기수로 수감생활 하던 손성모는 김대중이 2000년 9월 북한으로 돌려보냈고 북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미 국무부가 기밀 해제한 문건에 따르면 5·18은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한 것으로 돼 있다. 손성모는 북한군 소속이 아닌 민간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추종자들과 북한 민간 공작원들의 5·18 가담 과정에 김대중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면 손성모의 북송이 김대중에겐 ‘직접적인 인적 증거를 없애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사실로 드러나면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생포 간첩 사건 배후에 외부 침입자들과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반면 미 정보당국은 이창룡의 배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봤다. 기밀 해제된 ‘외교 전문(80SEOUL 006865)’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이씨 생포 등)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불순세력’과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impure elements’ and communist instigators lay behind the whole affair)”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이로써 미 정보당국과 다른 결론을 내린 노무현·문재인 조사위가 북한의 개입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는 관점에 무게가 실린다. 
 
5·18 연구가들은 이창룡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남파됐지만 잡히지 않은 간첩들이 더 많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미국의 외교 전문도 ‘외부 침입자들(infiltrators·남파간첩들)’과 ‘공산주의 선동가들(communist instigators·고정간첩들 또는 혁명역량)’이라고 복수로 못 박아 명시하고 있어서다. 이는 북한 인민군이 아닌 민간 공작조가 광주에 침투했다는 마이클 이(Yi) 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의 본지 인터뷰 발언과도 일치한다. <본지 10월11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⑱] “5·18은 北이 민중 봉기로 조작한 대남공작” 보도 참조>
 
안기부 상황일지와 당시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대공 수사당국은 1980년 5월16일 전남 보성군 득양면으로 침투한 간첩 이창룡을 23일 체포했다. 
 
동아일보는 1980년 5월24일자에 이창룡 검거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신문은 “서울시경(서울시 경찰청)은 24일 광주시에 들어가 학생 시민들의 시위를 무장 폭동으로 유도하고 반정부 선전 및 선동 임무를 띠고 남파된 북괴 간첩 이창룡(46·평양시 중구 역경림동36)을 23일 서울 시내에서 검거하고 통신장비와 난수표 등 20여 종을 압수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간첩 이씨는 체포당하는 순간 소지하고 있던 독침으로 자살을 기도했으나 경찰관에게 저지당하자 다시 혀를 깨물어 1.5cm가량의 자해상을 입었다”며 “이씨는 북괴노동당 연락부 소속으로 종전의 남파간첩과는 달리 국내 소요 지역을 대상으로 침투됐고 발각 시 자살을 원칙으로 했으며 시위 군중 속에 들어가 살인 방화 등을 조장하도록 시위군 중에게 줄 환각제를 소지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경찰은 밝혔다”고 했다. 
 
또한 “이씨는 20일 새벽 2시경 안내원 2명의 인도로 남해안에 침투, 21일 밤 순천에 도착, 광주 잠입을 시도했으나 군경의 검문검색이 심해 모든 진입로가 차단돼 포기하고 순천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야간 특급열차로 서울로 올라와 23일 새벽 5시경 서울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한 시간 가까이 서울역 주변을 서성거리며 오전 5시경 행인과 말을 나누다 거동을 수상히 여긴 정모(49)·최모(48) 부인 등 2명의 여관 안내원이 남대문경찰서 역전파출소에 신고해 붙잡혔다”고 신문은 검거 경위를 설명했다.
 
경찰은 이창룡이 허리에 차고 있던 공작금 193만5000원과 난수표·무전기·독침·위조주민증·은단형 환각제 등 22종 339점을 압수했다. 서울시경은 이씨를 신고한 두 부인에게 505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검거 경찰관을 1계급 특진시켰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김희송 씨는 5·18 관련 NGO 연구논문에서 “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1980년 당시 군 수사 기록(육군 기록정보관리단)에 따르면 이창룡은 검거되기 전 부산에는 다녀왔지만 광주에는 잠입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거는 경찰이 했고 안기부가 피의자 심문을 주도했다. 
 
김씨는 당시 수사했던 남대문경찰서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안기부 수사 기록은 논문에서 제시하지 않았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이창룡이 군사기밀 탐지 및 국내정세 파악 현 시국과 관련된 지하공작 포섭자 대동 월북 등을 목적으로 남파된 것으로 파악했다. 
  
▲ 1980년 5월24일자 동아일보. 신문은 ‘시위선동 간첩 검거’라고 제목을 달았다.
  
南가족 만나자 이창룡 전향 결심… 안보강사 활약 
 
체포된 순간 독침자살 기도… 경찰 제지하자 혀 깨물기도 
본명 홍종수, 고향은 양주… 시위대에 줄 환각제 다량 소지 
盧·文정부, 또다른 간첩 손성모도 “광주와 무관” 일방적 판단 
 
이런 가운데 본지는 이전 정권 조사위 보고서들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팩트와 정황을 충실하게 파악하지 않았음을 엿보게 하는 증언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7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창룡은 해상으로 침투한 뒤 뭍으로 나와 경기도 양주를 다녀온 것으로 전해진다. 양주는 그의 고향이다. 
 
어득용(67) 5·18특전사명예회복위원회 회장은 “간첩 이창룡의 고향이자 원적지는 경기도 양주”라고 말했다. 어 회장의 고향도 양주다. 
 
그는 최근 본지와 대면한 데 이어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6·25 전란의 와중에 월북했고 5·18 때 남파 간첩으로 내려온 이창룡은 고향인 양주를 방문했다고 고향 후배 A에게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58년 개띠인 후배는 죽은 줄 알았던 큰아버지가 북에서 내려와 만났다”며 A씨가 이창룡과의 만남에 대해 어 회장에게 직접 이야기한 사실을 전했다. 
 
어 회장은 “고향이 그리워 찾아왔다가 신분을 드러낼 수 없으니 형제들과 친지들이 살아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전쟁 난리 통에 모두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임무를 수행하다 검거된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중에 붙잡힌 뒤 전향할 수 있었던 것도 안기부 요원들이 직접 그와 형제·친지들을 만나게 해주면서 가능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어 회장이 전한 A씨 증언에 따르면 이창룡은 5·18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대치가 최고조에 달한 5월21일 삼엄한 경비 탓에 광주에 이르는 길목이 봉쇄되자 순천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광주 진입이 불발된 그는 22일 밤 열차 편으로 서울로 올라와 서울역에서 내렸지만 거동수상자로 본 주민이 신고하면서 수사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체포되면서 독극물을 복용하고 자결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이창룡은 혀의 3분의 1 지점을 깨물었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안기부는 이창룡을 조사하다가 그의 원적지가 양주인 사실을 파악한 뒤 형제와 친지가 생존해 있다고 그에게 알렸다. 
 
이창룡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6·25 당시 양주와 동두천·포천은 격전지여서 형제와 친지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생과 조카들을 만난 이창룡은 전향의 길을 택했고 안보 강사로 활동하며 5·18 당시 광주 임무에 대해 군부대를 중심으로 강연하다 수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생전 남한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배우자가 안기부 여직원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어 회장은 “이창룡의 여동생이 (과거) 농협에서 일했는데 몇 해 전 연락이 닿아 물어보니 ‘오빠(당숙)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5·18 당시 계엄군 소속으로 서울의 모 대학에 배치됐던 어 회장은 “광주에 참전하진 않았다”고 표현하면서도 “제2, 제3의 이창룡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향된 조사라는 비판을 받은 노무현·문재인 조사위는 5·18 당시 붙잡힌 손성모·이창룡 남파 간첩 사건을 광주사태와 무관한 개별 사건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으로는 광주의 소요 사태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장간첩은 1979년 한 해 동안 5건 침투했지만 1980년에는 1월부터 5월 초까지 4개월 동안 10차례 침투했다. 북한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결정적인 적화통일의 호기로 판단했다는 방증이다. <본지 8월30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⑫] “北 공작조 개입”… 軍 ‘사전 첩보’ 있었다 보도 참조> 
 
안기부 자료 등에 따르면 1980년 3월1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쪽에 침투한 무장 공비와 미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3월23일엔 서부전선 9사단 한강하구로 침투하던 공비가 아군에게 발각돼 교전하다 도주했다. 국군은 무장 공비 3명을 사살했고 소음기가 달린 기관총과 물갈퀴·암호문을 노획했다. 암호문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전사답게 돌격대답게 싸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3월25일 무장간첩선 1척이 포항만으로 침투하다가 해군에 의해 침몰했고 무장간첩 8명이 사살됐다. 
 
3월27일 강원도 15사단 정면에서 남하하던 공비와 교전 상황이 벌어졌다. 모두 도주했고 무장 공비 1명만 사살됐다. 5월12일 비무장지대(DMZ)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침투한 공비와 미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5월1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미군초소 전방 20m까지 침투한 무장 공비들이 미군과 교전하다가 돌아갔다. 5월16일 전남 보성군 득양면으로 침투한 간첩 이창룡이 5월23일 체포됐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탈북한 북한 간부 증언과 각종 기밀자료를 근거로 2004년 6월22~27일에 걸쳐 ‘김일성 비밀교시’를 연재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일성은 5월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다 (중략)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 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 학생들과 도시빈민 등 각계각층에 광범위한 민중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 박사의 ‘12·12와 5·18(2009년 출간)’ 239쪽에는 1980년 5월 대공 수사당국은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북한이 남침을 결정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애초 남침 시기는 4월 중순의 김재규 처형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사행 집행에 따른 항의 데모가 절정에 이를 때를 결정적인 시기로 봤다고 한다. 그러나 처형이 지연되자 “소요 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5월15~20일 사이에 남침하기로 재결정했다”고 했다. 그해 5월10일 육군본부가 작성한 ‘북괴남침설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첩보는 중국 정부가 일본 방위성에 제공한 것이다. 
  
2군사령관도 간첩 침투 실태 보고받았다 5·18 당시 우리 군이 북한의 침투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인식과 달리 실제 군당국이 의심한 정황은 곳곳에 있는 기록들에서 확인된다.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정성홍)가 확보한 1981년 5월22일 발간 육군본부 교훈집 63쪽에는 1980년 5월23일 2군사령관은 참모 작전회의에서 “광주지역의 난동자중에는 가발사용자와 복면한 자 등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특히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자처하는 자 20여 명이 있는 등 북괴의 ‘침투(浸透)’를 의심케 하는 실태”라고 보고받았다.
 
5·18 당시 감청을 통해 간첩 활동을 파악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전두환 회고록은 “무전 감청 결과 현장에는 무수한 간첩이 있었다“며 “하지만 정체를 밝히기 위해 군을 투입할 입장이 아니었다. 투입하면 내전이 되고 내전이 되면 북이 침략한다”고 당시 폭도와 혼재된 북한 스파이 색출이 지지부진했던 배경을 실토했다. 
 
이에 따라 5·18 연구가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보강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 실체를 조사할 정파적 시비가 없는 조사위 구성이 필요하다고 일치된 의견을 내고 있다. 
 
한 5·18 연구가는 “호남을 차별하고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인이 먼저 쏜 것처럼 꾸며 낸 북한의 모략과 거짓 선동 때문에 ‘남·남 갈등(남한 시민군과 계엄군의 총격전)’이 시작된 원인을 파헤친 뒤 미얀마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KAL) 격추 테러 사건처럼 북한에 책임을 묻고 공산주의가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본지에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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