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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208] 남한수의 전운 ③
백제군을 돕다가 고구려군이 물러가면 금현성을 차지하십시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15 06:30:10
 
 
거칠부를 다시 옥으로 돌려보낸 소항은 집무실로 돌아왔다. 이때 승려 하나가 방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소항이 놀라서 물었다.
 
선사(禪師)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소항을 허둥대게 한 주인공은 바로 성문사의 혜량 스님이었다. 명덕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혜량은 국왕조차도 존경하고 예를 갖추는 고승으로, 만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욕살이라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소항은 선사와 눈이 마주치자 속내를 들킨 기분이 들었다.
 
본관에게 가르침이 있으시다면 공손히 경청하겠습니다.”
 
혜량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옥에 갇혀 있는 원담이라는 자는 소승의 제자입니다. 그의 신분은 제가 보장할 테니 풀어 주십시오.”
 
욕살 소항은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떠돌이 승려인 줄 알고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는데 선사의 제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혜량이 이번 일을 국왕에게 읍소한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소항은 잠시 망설이다가 실리를 선택했다.
 
그자가 선사의 제자였습니까! 이런 낭패가 있나! 저희는 그가 신라의 간자인 줄 알았습니다. 선사의 제자라면 당장 풀어 드려야지요. 모르고 한 일이니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혜량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소승이 어찌 관에서 한 일을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원담을 풀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소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선사의 넓은 아량에 깊이 머리를 숙입니다.”
 
소항은 밖에 있는 군사들에게 명해 거칠부를 풀어 주게 했다.
잠시 후, 군사들이 거칠부를 데리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욕살은 손수 거칠부를 부축해서 편히 앉게 했다.
 
제가 스님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혜량이 대신 받았다.
 
관장(官長)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다 보면 그런 착오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도 괘념치 않을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선사가 앞장서서 나가자 명덕이 거칠부를 업고 뒤를 따랐다.
승려들은 관청 앞에 미리 준비해 둔 소달구지에 거칠부를 태우고 성문사로 향했다.
 
큰스님께서 말씀은 안 하셔도 자네를 아끼고 계신가 보네. 자네가 나가면 분명 관아에 잡혀 갈 것이라 걱정하시며 이리 나오신 거네.”
그 순간 거칠부는 스승이 자신에게 가르치려 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사람은 자비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을 통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깨달았다.
거칠부는 성문사에 머물며 고문으로 상하고 지친 육신을 추슬렀다. 명덕의 지극한 간호 덕분에 열흘 후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거칠부는 방장 스님을 찾아가 다시 하직 인사를 했다.
그동안 아무 말도 없었던 혜량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 또한 네가 겪어야 할 시련 중 하나였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거라.”
 
거칠부는 스승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말보다 감미롭고 따스했다.
거칠부는 명덕에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성문사를 떠났다. 남부 욕살이 마련해 준 통부가 있었기에 신라로 가는 동안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신라에 도착한 거칠부는 승복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토함산(吐含山)에 들어가 초당(草堂)을 짓고 그곳에 머물며 학문에 매진했다. 그는 불자가 아니라 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세속에서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감당해야 할 소임이었다.
거칠부는 고금(古今)의 학문을 배우고 익혀 만물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에 도달했다. 그 소문이 인근에 퍼지자 많은 사람이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다. 그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문하에 받아들였다. 자신의 작은 지혜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된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거칠부의 명성은 신라 전역에 알려졌다. 이사부는 거칠부와 당숙질 사이였는데 여가가 생기면 함께 담소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질자(姪子)의 해박한 지식과 유연하면서도 날카로운 정견(政見)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나라의 역사서를 엮는 일에 천거한 것이었다.
진흥왕은 거칠부를 등용하여 대아찬(大阿飡)의 관급을 내리고 국사 편찬의 중책을 맡겼다. 거칠부는 왕명에 따라 전국의 문사(文士)들을 모아서 사료를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서력 549, 양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각덕이 귀국했다. 양나라에서는 불교를 장려한 덕분에 수많은 사원이 들어섰다. 각덕은 그곳에서 고승을 찾아다니며 불법을 구하고 불도를 깨우쳤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조국의 백성에게 널리 전하겠다는 열망을 품었다. 때마침 양무제가 신라로 사신을 파견하면서 그에게 불사리(佛舍利)를 전하게 했다. 각덕은 이를 계시를 받아들이고 사신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진흥왕은 양나라 사신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는 이찬 이사부도 참석했다. 이사부는 금의환향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반가움과 함께 야속함을 느꼈다.
지난날, 이차돈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아들이 출가한 것도 모자라 불법을 구한다고 양나라로 떠났을 때 다시는 못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얼굴을 대하니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라에 돌아왔으면서 자신을 찾지 않은 아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각덕은 아버지를 보고 애잔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오랜 수련을 통해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진흥왕은 각덕이 가지고 온 불사리를 흥륜사에 안치하게 했다.
며칠 후 신라의 백관이 흥륜사에 늘어선 가운데 각덕은 불사리가 담긴 함을 들고 대웅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구경 나온 백성으로 절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흥륜사 주지인 성일의 주재 아래 사리 안치를 기념하는 법회가 열렸다.
각덕은 불법 아래 모인 수많은 군중을 보며 친구인 이차돈을 떠올렸다.
 
보게나. 자네의 희생이 얼마나 큰 열매를 맺었는지를.”
 
마치 이차돈이 흘린 핏방울 하나하나가 불심(佛心)으로 환생한 듯했다.
불사리를 대웅전에 놓인 함에 안치한 각덕은 자신을 깨달음으로 인도해 준 벗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불경을 암송했다. 청아한 목소리가 서서히 절 안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흥륜사의 사리 안치식은 신라에 찬란한 불교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고구려에서는 안원왕이 중병이 들어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국왕이 언제 붕어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왕위 계승을 놓고 정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안원왕에게는 세 명의 왕후가 있었다. 대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중부인과 소부인은 각각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평성(平成)과 재웅(再雄)이었다.
평성은 어린 나이에도 어른을 능가할 정도로 총명하고 지혜가 남달랐다. 안원왕은 그를 특히 아껴서 태자로 삼았다. 소부인은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
소부인은 친정 오라비인 세항(細沆)을 불러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평성에게 왕위가 넘어갈 겁니다. 그리되면 우리 재웅이는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세항이 단호하게 말한다.
 
제가 살아있는 한 평성은 결코 왕좌에 오를 수 없을 겁니다. 왕위를 이을 분은 오직 재웅 왕자뿐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그는 예전 국내성에 기반을 둔 구() 귀족을 대표하는 집안의 가주였다. ()씨 집안은 장수왕의 평양 천도로 세력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 그러다가 세항의 누이가 안원왕의 부인이 되고 왕자를 생산하자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질자(姪子)인 재웅이 왕위를 잇지 못한다면 권력의 무대에서 밀려나는 것은 불 보듯 자명한 일이었다.
세항이 다시 힘주어 말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재웅 왕자를 보위에 올리겠습니다. 누이는 저만 믿으십시오.”
 
소부인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오라버니만 믿겠습니다.”
 
소부인 측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중부인 역시 친정아버지인 추운(麁雲)의 힘을 빌려 이에 대비했다. 추운은 세항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귀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렇게 두 진영은 각자 세를 규합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안원왕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세항은 군사를 이끌고 대궐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이들은 성문을 지나다가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추운의 군사들에게 저지당했다. 이렇게 해서 추군(麁軍)과 세군(細軍)이 전투를 펼치게 됐다.
싸움은 사흘간이나 계속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군이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월등한 전력으로 몰아붙이자 수적으로 열세인 세군은 감당하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전투는 결국 추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소부인과 재웅은 별궁에 감금되었다. 이때 겨우 목숨을 건진 세항은 몇몇 심복만을 거느리고 압록수를 건너 북변으로 달아났다.
 
서력 545, 태자 평성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고구려 제24대 임금인 양원왕(陽原王)이다.
양원왕이 등극하자 권력을 장악한 추운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세군에 참여했던 귀족들에 대한 숙청이 벌어지면서 곳곳에서 피바람이 일었다. 조금이라도 세항에게 도움을 줬거나 동조한 자는 끌려가 처형당했다. 이때 추운 일파에 밉보여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자도 부지기수였다.
고구려가 혼란에 빠지자 백제의 성왕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장군 달사(達巳)에게 군사 1만을 주어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고구려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장군 범개(范蓋)를 보내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포위했다.
 
예상 밖으로 고구려가 강하게 나오자 성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원병을 청했다.
백제의 사신을 접견한 진흥왕은 사신이 객관으로 물러가자 상대등(上大等) 이사부를 가까이 불렀다.
진흥왕이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백제에서 도움을 청해 왔습니다. 이번 일은 상대등께서 직접 가 주셔야겠습니다. 백제군을 도와 싸우다가 고구려군이 물러가면 금현성을 차지하십시오.”
 
이사부는 깜짝 놀랐다.
 
그리하면 백제와의 동맹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우리와의 동맹을 깨지 못할 겁니다. 백제 왕이 아무리 아둔해도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를 적으로 돌리겠습니까.”
 
상대등은 고개를 들어 국왕을 바라봤다. 이제 겨우 열여덟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심계가 깊었다.
이사부는 백제를 구원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군사를 이끌고 금현성으로 달려갔다.
 
신라군이 도착했을 때 고구려군은 성을 포위한 채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금현성의 군사들은 쉽사리 항복하지 않았다.
상대등 이사부는 장수들을 모아 놓고 작전을 지시했다.
 
고구려군은 장시간 공성전을 펼치느라 지쳐 있을 것이다. 저들이 숨 돌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속전속결로 끝내자.”
이사부가 부장 주진(朱珍)을 돌아보며 명했다.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숲길을 따라 우회하여 고구려군의 후위를 공격하라.”
 
주진이 명을 받고 나가자 이사부는 기마병을 앞세우고 고구려군을 향해 쳐들어갔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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